"아들 묘소에 새 판결문 올렸습니다" 고 문중원 부친 문군옥 씨 인터뷰
5년간 고대한 소식 전화로 들어
1심과 같은 결과 나올까 봐 걱정
경마업계 비리 청산에 온몸 바쳐
현장에 여전히 개선할 부분 많아
"사실 진술한 분들께 정말 감사"
“새 판결문이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거 하나 때문에 싸운 거니까. 판결문을 받아 아들 묘소에 올렸습니다.”
5년 전 아들을 하늘로 보낸 문군옥(76) 씨는 지난 12일 ‘거짓은 순간이고 진실은 영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19년 렛츠런파크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문중원 기수를 죽음으로 이끈 ‘조교사 개업 심사’에 비리가 있었다고 2심 재판부가 선고한 날이었다. 제주도에 사는 문 씨는 지난 14일과 18일 전화로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가끔 흐느꼈지만 “가슴에 큰 돌덩어리가 부서진 듯하다”고 했다.
“판결 날 며느리가 ‘아버님, 결과 나왔어요’라고 하더니 울면서 말을 잇질 못했습니다. 2심도 결과가 좋지 않은 듯해 ‘전화를 끊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문 씨는 5년간 고대하던 소식을 제주도 사무실에서 전화 통화로 들었다. 판결 전날 부산에 갔지만, 주변에서 1심과 같은 결과가 나올까 봐 법원에 가는 걸 만류했다. 조교사 개업 심사 발표 자료를 검토한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 전 경마처장 A 씨와 검토를 부탁한 조교사 B 씨 등이 2021년 1심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판결은 3년 만에 뒤집혔다. 부산지법 형사항소 2-1부(부장판사 계훈영)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0개월, B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문 씨는 2019년 11월 아들인 문중원 기수가 세상을 등진 후 경마 업계 비리를 청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문 씨는 부산경남경마공원뿐 아니라 서울 광화문, 청와대 앞 등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해 왔다. 올 5월엔 부산지법 앞에서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도 이어갔다. 당시 문 기수는 유서에 ‘한국마사회 간부 등에게 밉보이면 마방을 받을 수 없다’며 조교사 개업 심사를 포함한 다양한 부조리를 폭로했다. 경마 감독에 비유되는 조교사로 활동하려면 실력만으로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많은 사람이 다치기도 했는데 고마웠던 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압박을 받았을텐데 사실 그대로 진술한 분도 있었습니다. 큰 합의금을 제시받기도 했지만, 아들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긴 며느리와 사돈에게도 감사합니다.”
문 씨는 수백 명이 오랜 기간 함께 싸웠다며 울먹였다. 긴 싸움 과정에서 벌금형을 받은 민주노총 간부 등에게 미안함도 전했다. 재판 과정에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진술한 한국마사회 관계자도 언급했다. 문 씨는 그 진술로 전 경마처장 A 씨가 조교사 개업 심사에 당연직인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했다.
“판결 결과를 보고 한국마사회가 더욱 달라지길 바랍니다. 많이 나아졌다고 얘기하지만, 연줄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환경이 됐으면 합니다.”
문 씨는 아들과 같은 죽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 등이 더욱 공정하게 일하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했다. 조교사 개업 심사는 ‘옥상옥 심사’라는 비판에 폐지됐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한국마사회가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 경마처장 A 씨 등에 대한 행정적인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문 씨는 “경마장에서 사람 때문에 억울해하는 이들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라며 “능력을 우선하고,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경마 현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