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고성오광대놀이
달이 휘영청 떠오르면 말뚝이 탈을 쓴 광대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광대들과 관객들도 신명과 해학에 분위기가 한껏 들뜨면서 연희 분위기는 최고조로 치닫고, 온 고을이 들썩인다. 탈춤은 탈을 쓰고 춤과 함께 음악 연주와 노래, 재담을 통해 사회 부조리와 갈등을 과감하게 풍자하며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이내 화해와 조화의 장으로 마무리하는 내용의 사회 풍자적 공동체 놀이다. 주로 본격적인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인 정월대보름에 많이 벌어졌다. 꽹과리, 장구, 북, 징 등 타악기로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 타령 등을 연주하면, 이야기 전개에 따라 광대들이 탈춤을 춘다.
탈춤은 한반도 곳곳에서 열렸지만, 영남에서는 ‘오광대’라는 명칭으로 다른 지역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같은 영남권에서도 낙동강 동쪽은 부산의 수영야류, 동래야류와 같이 ‘야류’라고 하고, 낙동강 서쪽의 고성, 통영, 가산, 마산 일대에서는 ‘오광대’라고 불렀다. 다섯 광대가 탈을 쓰고 춤추며, 다섯 마당으로 구성된 오광대놀이는 말뚝이 탈을 쓴 광대가 권위만 내세우는 양반에 대한 비난과 풍자 등 계급사회에 대한 조롱이 극 전체를 주도한다. 홍수와 기근을 피해 간신히 유지하는 삶마저 위협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오광대가 대결과 승리를 강조하는 싸움 굿 원리라면, 고성오광대는 화해와 통합을 지향하는 상생의 굿 원리를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 남편에게 버림받고 삶을 마감하는 여인네의 기구한 운명 등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처첩 풍속에 초점을 맞춘 시각도 눈길을 끈다. 영남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고성오광대놀이는 1964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고성오광대놀이 국가무형유산 지정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공연이 오는 24일 오후 7시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추다, 돌다, 뛰다, 날다’라는 주제로, 고성오광대의 초대 보유자 고 김창후 선생의 외증손녀인 영남교방청춤의 명무 박경랑과 ‘연희집단 The 광대’ 등 후예들이 출연해 역동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익살과 해학에 실은 비판 의식을 예술로 승화시킨 고성오광대놀이가 오래오래 전승되기를 소망한다. 또 한편으로는 백성의 애환을 내팽개치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지금의 정치판에 대해서도 말뚝이 탈을 쓴 광대가 자진모리 장단에 맞춘 덧배기춤을 추면서 “발등에 엉겨 붙은 모기 새끼만도 못하다”라는 조롱 섞인 대사 한 됫박 쏟아내는 장면도 살짝 상상해 본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