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후재난 상시 대비책 강화 필요성 보여준 ‘극한 호우’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법한 규모”
위기 대응 전략 획기적으로 보강해야
지난 21~22일 부산·경남을 비롯한 남부지방 일대는 그야말로 ‘물폭탄’을 맞았다. 경남 창원의 529mm를 비롯해 이틀간 400mm 넘는 강수량을 기록한 곳이 속출했다. 부산에서도 시간당 50mm 넘는 비가 내린 곳이 많았다.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은 그나마 다행이나, 하천이 범람하고 차량이 침수되는가 하면, 땅 꺼짐, 정전 사고 등의 피해가 잇따랐다. 산사태 등의 우려로 주민 1500여 명이 긴급 대피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김해 대성동고분군의 한쪽 사면이 무너지는 일도 발생했다. 문제는 극한 호우가 이처럼 단시간에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일이 이젠 결코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름 장마철도 아닌 가을, 그것도 10월을 앞둔 9월 하순에 역대급으로 내린 이번 극한 호우는 전례가 드물 정도로 장기간 이어진 폭염 뒤 갑자기 찾아왔다.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며 정체해 있던 북태평양기단에 약화된 태풍 풀라산(열대저압부)의 강력한 비구름이 더해지면서 극한 호우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안 그래도 긴 정체전선에 따른 폭우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는데, 태풍의 영향까지 겹치며 당초 예상을 벗어난 엄청난 비가 내린 것이다. 근래 한반도 주변의 기압 배치 변화로 가을 태풍이 한반도 쪽을 향할 가능성이 예전보다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는 점에서 향후 우려는 더욱 커지게 됐다.
따지고 보면 이번 극한 호우도 세계적인 이상기후 탓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기와 해류의 흐름이 바뀌면서 폭염과 폭우가 교차해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반세기 중 가장 길었다는 가뭄이 이어져 피해가 속출하다가 장마철에는 다시 기록적인 많은 비가 이어졌다. 올해도 전례 없는 폭염이 추석 때까지 계속되다가 갑자기 극한 호우가 발생했다. 이처럼 극단을 오가는 이상기후 현상은 앞으로 더 잦아지고 그로 인한 피해 역시 더 커진다는 게 기상학계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말 그대로 기후재난이라 할 것인데, 더 두려운 것은 이런 재난을 제때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극단의 기후는 이제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뉴노멀이 됐다. 그렇다면 그에 맞춰 재난 대비책과 위기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번 극한 호우는 9월 강우로는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법한 규모였다. 과거의 잣대로 만들어진 대응 전략이 통할 리 없다. 미증유의 재난이 닥치는 만큼 대응 전략에도 획기적인 보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불가항력의 재난이라 해도 철저히 대비한다면 피해는 줄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선제적으로 대응하느냐다. 재난 대비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선제 대응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이번 극한 호우의 경고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