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옥탑방 방수공사 중 발견된 백골 사체, 16년 만에 드러난 진실(종합)
경남 거제에서 동거하던 연인을 둔기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시멘트로 암매장한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타인이 드나들기 힘든 집 창문 밑에 벽돌을 쌓아 숨겼는데, 최근 주택 방수 공사를 하는 과정에 영영 미제로 묻힐뻔한 ‘실종 사건’의 실체가 16년 만에 드러났다.
거제경찰서는 연인이던 동거녀를 살해 후 사체를 은닉한 50대 A 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1998년 부산의 한 유흥업소에서 디제이(DJ)로 일하다 손님으로 온 여덟 살 터울 여성 B 씨를 만났다.
이후 연인 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2004년 거제로 와 동거를 시작했고, 2007년 4층짜리 원룸 옥탑방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행복한 동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 10월 10일 오후 2시께, 사소한 문제로 언쟁을 벌이다 감정이 격해진 A 씨가 둔기를 휘둘렀고, 머리와 얼굴을 가격당한 B 씨는 결국 숨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A 씨는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옥탑방 창문 밑에 암매장했다. 이곳은 옥탑방 창문을 넘어가야 닿을 수 있는 길고 좁은 통로다. 좌우가 막힌 구조라 옥탑방 세입자를 제외하면 드나드는 이가 거의 없었다.
여기에 벽돌을 쌓아 만든 세로 70cm, 가로 39cm, 높이 29cm 공간에 가방을 숨기고 시멘트로 채웠다. 이어 냄새가 새 나오지 않도록 미장한 뒤 표면 방수용 녹색 페인트를 칠해 마치 원래 있던 구조물인 것처럼 꾸몄다.
필요한 자재는 원룸 소유자가 옥탑방 옆에 보일러실 보수를 위해 준비해 둔 것들을 가져와 썼다.
B 씨 가족은 범행 3년이 지난 2011년에야 실종 신고를 했다. 가족 간 유대감이 깊지 않아 평소 연락이나 왕래가 잦지 않았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하지만 실종 사건은 ‘미제’로 종결됐다. B 씨 행방을 추적할 만한 단서가 없었던 데다, 뚜렷한 범죄 혐의점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거인이던 A 씨 역시 참고인 조사를 받았는데, A 씨는 “헤어졌다”고 둘러댔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이나 실종, 해외 도피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다각도 수사했지만 CCTV나 통화 내용 등 물적 증거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친구 등 지인도 거의 없는 상황에 생활반응이나 행적이라든지 조사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A 씨도 조사했지만 물증이 없어 계속 수사가 어려웠다”고 했다.
범행 후 8년 넘게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던 A 씨는 2016년 마약에 손을 댄 사실이 들통나 구속됐다. 그리곤 이듬해 출소해 형제, 자매가 있던 양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A 씨가 떠난 뒤 세입자가 없어 공실로 남았던 옥탑방은 명도 소송을 거쳐 건물주 개인 창고나 사랑방으로 사용됐다. 그러다 지난달 옥상 보일러실 누수를 잡으려 방수 공사를 하는 과정에 충격적인 범행의 실체가 드러났다.
건물주 의뢰로 콘크리트 파쇄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수상한 여행용 가방을 발견했다. 속엔 백골화가 진행 중인 사체가 있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지문 감식, 부검을 통해 신원과 사인을 확인한 경찰은 A 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 지난 19일 양산에서 A 씨를 체포했다.
최초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하던 A 씨는 경찰의 끈질긴 추궁에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또 이 과정에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났다.
경찰은 살인죄를 적용했다. 살인죄 공소시효는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된데 이어 2015년 완전히 폐지됐다. 반면 사체 은닉은 공소시효가 7년이라 제외했다.
경찰은 “범행 경위 등에 대한 보강 수사 후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