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 나게 싸운 40여 년 질긴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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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이스라엘 투쟁’ 기치
폭탄 테러-요인 암살 주고받아

23일 레바논 바알베크 지역에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23일 레바논 바알베크 지역에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면서 40여 년간 양측이 이어온 질긴 악연에 관심이 쏠린다.

레바논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는 1980년대 초 레바논 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창설됐다. 이스라엘은 당시 레바논 베이루트에 거점을 두고 자국에 테러를 가하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축출하겠다며 1982년 6월 내전 중이던 레바논을 침공했고, 이에 강경파를 중심으로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시작한 것이 헤즈볼라 모태다. 헤즈볼라는 아랍어로 '신의 정당'이란 뜻이다.

헤즈볼라가 가장 초기에 이스라엘에 일격을 가한 사건은 1982년 11월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PLO를 레바논에서 철수시키며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던 때, 레바논 남부 해안 도시 티레에 있던 이스라엘 국내정보기관 신베트 본부가 폭발해 91명이 사망했다.

당시 폭발의 배후 세력들이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이듬해 헤즈볼라를 창설했다. 헤즈볼라는 이후 자살폭탄 테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악명을 떨쳤다. 1983년 4월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을 공격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막사를 겨냥한 차량 자살폭탄 테러로 350여 명을 살해했다.

헤즈볼라는 1990년 레바논 내전이 끝난 뒤에도 대이스라엘 저항을 이유로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고 이후 레바논 국내 정치에 참여하며 세력을 크게 키웠다.

이스라엘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1980년대까지는 정보 부족으로 헤즈볼라의 테러 계획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나 1992년 2월 레바논 남부를 공습해 헤즈볼라 수장이던 아바스 알무사위를 사살하는 등 토벌에 나섰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갈등은 2006년 7월 한차례 정점을 찍는다. 당시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상자 10여 명이 나오고 이스라엘군 병사 2명이 납치되자 이스라엘군이 이들을 구출하겠다며 레바논을 침공했다. 양측은 2006년 7월 12일부터 8월 14일까지 34일 동안 전면전을 치렀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에서 160여 명, 레바논에서 100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된다.

헤즈볼라는 압도적 전력의 이스라엘을 막아내면서 이후 군사·정치적으로 역량을 크게 키우게 된다. 남미는 물론 유럽, 북미 등에서 각종 사업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이스라엘을 겨냥한 테러를 계획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인사 암살로 대응했다. 2008년 미국 중앙정보국과 협력해 원격조종 폭탄을 이용, 헤즈볼라 지휘관 이마드 무그니예를 암살했다. 무그니예의 아들도 2015년 이스라엘군의 시리아 골란고원 공습으로 사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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