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 K크루즈 산업 개척… “한국, 자생력 갖춘 시장될 것” [WOF 제18회 세계해양포럼]
2024 대한민국 해양대상 수상 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
연안 크루즈 이어 첫 호화 배 건조
모호한 규제 등 숱한 시련 극복해
WOF 이끌며 글로벌 위상도 높여
부산의 해운사 유치도 기여 의지
견리사의(見利思義).
크루즈 관광 불모지를 맨손으로 개척한 팬스타그룹 김현겸 회장의 좌우명이다. 눈앞의 이익을 보면 의리나 주변을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익보다는 지역과 해양 산업의 새 가능성을 찾고자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국내 최초 카페리선 취항, 국적 크루즈선사 운영, 국산 호화 크루즈선 건조에 이어 로봇시장 진출에 이르기까지. 그는 국내 해양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해양산업협회가 주관하는 ‘2024년 제15회 대한민국 해양대상’을 받았다.
■연안·호화·차터 등 K크루즈 개척
김 회장은 국내 연안 크루즈의 성공 가능성을 처음 증명했다. 2004년 12월부터 주말 한 차례씩 2000t급 팬스타드림호를 투입해 부산 연안을 도는 ‘원나잇 크루즈’를 운영했고, 올해 탑승객 20만 명을 돌파했다. 일본 정부 요청으로 연안 크루즈 관련 해외 강연도 했다.
“부산 앞바다는 파도가 세, 작은 배는 멀미 나고 내부도 흔들립니다. 우리 배는 규모가 큰데다 부산의 해안 경치를 보며 ‘크루즈 놀이 문화’도 즐길 수 있으니 주목을 받았죠.”
손해만 보지 말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연안 크루즈는 부산~오사카 정기 카페리선의 매출 수준까지 오를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한일 노선은 양국 관계 등 외부 리스크가 있었던 반면, 원나잇 크루즈는 300~350명이 꾸준히 이용했습니다.”
잊지 못할 기억도 있다.
“한 번은 운항을 마쳤는데 할머니가 내리시지 않고 막 우시는 겁니다. 서양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아크로바틱도 하고 춤도 추고 마술도 하는 그 모습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겁니다. 하루만이라도 더 타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고, 그 기억이 사업을 이어가는 데 큰 동력이 됐습니다.”
8년 전 일찌감치 차터 크루즈 산업도 일궜다. 차터 크루즈는 정통 대형 크루즈선을 7~10일 정도 임차해 운영하는 형태다. 국내에서는 팬스타 등 3개 회사가 차터 크루즈를 운영 중이다.
“저희가 4~5항차 운항하고 있고, 국내 전체로 보면 연간 3개월가량 차터 크루즈가 운영됩니다. 6개월 정도 차터 크루즈가 성공적으로 운항된다면 한국도 크루즈 시장의 자생력을 충분히 갖추게 될 것입니다.”
팬스타그룹은 첫 국산 호화 크루즈 ‘팬스타 미라클호’도 내년 4월 출항시켜 K크루즈 산업의 외연을 넓힐 전망이다.
■실패 속 꽃핀 ‘도전 의식’
“그간의 사연을 말하려면 꼬박 이틀은 걸릴 겁니다. 허허.”
김 회장은 불모지에 새로운 시장을 열기까지 숱한 시련을 극복해야 했다. 사실 카페리 산업에 처음 진출한 것도 좌절감에서 비롯됐다.
“포워딩 업체를 시작한 뒤 한 컨테이너 선사를 인수하려 했는데, ‘배가 없다’는 이유로 저희 회사에 팔지 않더군요.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결국 다른 회사로 넘어갔습니다. 그때 반드시 내가 배를 운영하겠다, 아무도 갖지 않는 배를 갖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게 카페리입니다.”
더불어 기존에 없던 시장이다 보니, 모호한 법적 규제나 기준도 해결해야 했다.
실패의 쓴맛도 봤다. 2008년 연안 크루즈의 성공을 확신해 ‘팬스타 허니호’를 취항했지만, 손해가 막대했다. 기대만큼 수요가 없었는데다 글로벌 금융위기, 고유가 등 외부 악재가 겹쳤다.
“일주일 내내 연안 크루즈를 운항할 만큼 수요가 받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차터 크루즈 산업에 도전했고, 또 다른 기회를 만들었죠.”
대한민국 국적 1호 크루즈페리선 팬스타드림호의 취항도 순탄치 않았다. 일본에서 운항되던 팬스타드림호는 현지에서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장기간 ‘항로 취소’ 허가가 나지 않았다. 선사의 법인 분리 등 우여곡절을 거쳐 2001년 배를 사올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때를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꼽았다.
■“‘해양 수도’ 부산의 미래 함께 고민”
부산 출신의 김 회장은 지역에 남다른 애정을 갖는다. 글로벌 항만을 가지고도 해운 회사의 본사가 서울에 밀집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렇다고 패배주의에 젖어 있을 필요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해운 회사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교하게 분석해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초대형 ‘해운센터 빌딩’도 만들어 필요한 혜택을 제공해야 합니다.”
김 회장은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해양포럼(WOF)도 7년째 이끌며 해양 분야의 ‘다보스 포럼’으로 성장시켰다. 기획위원장으로서 강한 추진력과 소통 능력이 돋보였다.
앞으로도 새 시도와 모험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최근 일본의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와 손잡고 AI 로봇 산업에도 진출했다. 지난 4월부터 6개월 만에 ‘청소 로봇’ 100대가량을 파는 데 성공했다. “현재 중국과 싱가포르에서 로봇이 제작되는데, 향후 한국에서 제조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더불어 일본을 오가는 컨테이너선 사업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입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