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책에 남기던 ‘장서표’를 아시나요?
소유와 애정 표시 판화 작품
10월 말까지 창비부산 전시
그때 그 시절 교과서 표지에는(심지어 옆쪽에도) 자신의 이름을 써 놓았다. 책 주인을 확실하게 알려 누가 가져가더라도 금세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과거 서양에서는 자신이 소장한 귀한 책에 대한 소유와 애정의 표시를 남기고자 판화를 찍어 만든 장서표(藏書票)를 붙였다. 장서표에는 라틴어 ‘EX-LIBRIS’라는 국제 공통의 표기(영어로는 ‘Book Plate’)와 장서가 자신의 이름이 반드시 들어갔다.
여기에 서재명, 책의 내용이나 관련된 시, 격언, 경구들을 적어 넣기도 했다. 책에 붙이는 용도가 정해져 있다 보니 아무리 커도 우편엽서의 크기를 넘지 않았다. 대개 문자와 그림이 조화롭게 결합되어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한자문화권에서는 책에 직접 찍는 장서인(藏書印)을 사용했다는 점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장서표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10월 27일까지 부산역 맞은편 창비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 시대 작가들의 장서표를 소개하는 판화가 남궁산의 ‘책 속에 박힌 별’ 전시가 바로 그것이다. 남 판화가는 ‘생명 판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일관되게 생명을 주제로 한 생명 연작 판화에 몰두해 왔다. 수차례의 장서표 개인전을 열면서 장서표를 국내에 소개하고 알린 장본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황석영, 김훈, 안도현, 정호승, 신경림 같은 국내 대표 작가를 비롯해 부산의 서형오 시인, 함정임 소설가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장서표 판화 50종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경림 시인의 장서표에는 새 한 마리가 나온다. 신경림 시인이 “사람은 더불어 혼자 산다. 이상한 얘기지만 남과 더불어 혼자 산다. 남과 더불어 살지만 결국 혼자 책임지니까 혼자 산다”라고 말한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10월 5일 오후 2시에는 남 판화가를 초청해 장서표의 의미를 살펴보는 강의가 열리고, 10월 16일에는 성전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나만의 장서표를 만들어 보는 체험행사를 한다. 창비부산 이교성 대표는 “장서표는 책의 세계에 박힌 작은 별과 같다. 장구한 역사를 지녔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장서표가 일상에 작은 별빛 같은 영감과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