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다섯쌍둥이, 출산의 교훈
인간이 유인원과 결별하게 된 계기는 직립 보행이다. 두 발로 뛰고, 두 손으로 사냥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단백질을 풍부히 섭취한 덕분에 뇌 용량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는 0.45㎏에 불과했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1.35㎏로 세 배 늘었다. 머리가 커지면서 출산에 문제가 생겼다. 꼿꼿이 설 때 균형 유지를 위해 골반이 좁아진 탓이다. 평균적인 포유류 신생아의 뇌는 어른의 45% 크기다. 45%가 되려면 엄마 뱃속에서 21개월 키워야 한다. 직립이냐, 21개월이냐. 이른바 ‘산과적 딜레마 가설’이다.
진화의 도전에 맞서 인류는 조산아 출산을 선택했다. 뇌 용량 25%의 미성숙 상태로 먼저 낳은 뒤 양육하는 전략은 커진 머리와 좁아진 산도의 타협이다. 다른 포유류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제 앞가림을 하지만 인간 신생아는 숨쉬고 젖을 빠는 것 외에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유를 먹고 속이 부글부글 끓거나 설사로 혼이 나는 게 유당 불내증이다. 젖당(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으면 장에 탈이 난다. 신기하게도 신생아는 이 효소가 있어서 모유를 주된 영양분으로 삼지만 어른이 되면 효소가 소멸된다. 힘없는 젖먹이의 밥줄을 어른들이 빼앗지 못하게 하려는 진화의 결과로 해석된다. 생명의 탄생이 우연한 것처럼 보여도 그 이면에는 수백만 년 세월에 걸쳐 이뤄진 도전과 응보의 내력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지난 20일 국내 최초로 다섯쌍둥이가 자연 임신으로 태어나 화제다. 남자아이 셋과 여자아이 둘이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처음 다둥이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30대 부부는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또 의료대란의 와중에 병원 찾기에 애를 먹었다. 출산한 병원에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어 병원을 옮겨야 했다. 새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보려면 여전히 신산스러운 고비를 넘어야 한다.
다둥이 탄생을 기뻐하는 데만 그쳐선 안 되고, 모든 신생아와 산모에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이 제공되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조산아 출산의 맥락을 되새겨 봐도 시사하는 바가 같다. 갓난아이 양육이 힘들어도 지속 가능했던 것은 공동체 부조라는 막강한 지원 체제가 있어서다. 애당초 산모만의 ‘독박 육아’가 아닌 주변의 보살핌이 전제된 진화적 선택이었다. 한국이 당면한 초현실적인 저출생률은 진화론적 교훈을 역행한 결과다. 추세를 반전하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지금도 한국 사회는 퇴화하고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