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고 재워주곤 ‘빚 갚아라’…부산 선원업계 ‘큰손’ 알고보니(종합)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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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무등록 선원소개소 운영 50대
발달장애 3명 숙식 제공 후 채무 독촉
서해 꽃게잡이 통발어선 취업 알선해
추후 정산 핑계로 임금 1억여 원 갈취
다른 선원과 짜고 선급금 빼돌리기도

통영해양경찰서는 무등록 선원소개업자를 운영하며 발달장애인들을 어선원으로 취업 시킨 뒤 임금을 갈취한 소개업자를 준사기·직업안정법 등 혐의로 구속하고, 업자와 공모해 선주들로부터 선급금을 편취한 어선원 3명을 사기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이정석 수사과장이 범죄 영상을 설명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통영해양경찰서는 무등록 선원소개업자를 운영하며 발달장애인들을 어선원으로 취업 시킨 뒤 임금을 갈취한 소개업자를 준사기·직업안정법 등 혐의로 구속하고, 업자와 공모해 선주들로부터 선급금을 편취한 어선원 3명을 사기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이정석 수사과장이 범죄 영상을 설명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을 내국인 선원이 기피하는 근해어선에 태운 뒤 3년 넘게 임금을 착취한 50대 선원소개업자가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특히 이 업자는 부산을 연고로 20년 넘게 무등록 소개소를 운영한 이른바 ‘업계 큰손’인데, 장애인을 등쳐 챙긴 범죄 수익금 수억 원을 도박과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 업자와 짜고 선주들에 받은 선급금을 챙겨 달아난 숙련공들도 함께 덜미를 잡혔다.

경남 통영해양경찰서는 무등록 선원소개업자 A 씨를 구속하고, A 씨와 공모해 선주들로부터 선급금을 편취한 일반 어선원 3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25일 밝혔다.

해경에 따르면 A 씨는 2019년부터 최근까지 50대 B 씨와 60대 C 씨 그리고 50대 D 씨 등 3명을 서해안 꽃게잡이 근해통발어선에 취업시킨 후 임금 1억 3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다.

피해자들은 어선원 경력 20년 이상의 나름 숙련공이지만 지적 능력이 일반인보다 떨어졌다. 일상적인 대화도 가능하고 지시도 곧잘 따르지만 세밀한 판단이나 의사 결정 역량은 부족했다. 장애 판단 기준으로 보면 B 씨는 지적장애, C 씨와 D 씨는 경계선장애 수준이라는 게 해경 설명이다.

A 씨는 뚜렷한 연고가 없던 이들을 소개소로 데려와 숙식을 제공하며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들에게 족쇄가 됐다. A 씨는 이를 빌미로 “빚을 졌으니 일해서 갚으라”고 압박했다.

통영해양경찰서 수사팀이 서해 꽃게잡이 통발어선 임금착취 피해자들을 찾아가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통영해양경찰서 제공 통영해양경찰서 수사팀이 서해 꽃게잡이 통발어선 임금착취 피해자들을 찾아가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통영해양경찰서 제공

결국 등 떠밀려 향한 일터가 서해 꽃게잡이였다. 이들 어선은 한번 출어하면 최소 보름 이상 바다에 머물며 조업한다. 가뜩이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많을 땐 하루 20시간 넘게 일해야 해 내국인은 꺼린다. 피해자들은 이 어선에서 월 3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 3개월간 묵묵히 일했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들이 받은 대가는 월 평균 10만 원 남짓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A 씨가 자신 계좌로 받아 챙겼다. A 씨는 “일단 소개소에서 일괄 받은 뒤 한번에 정산해 주겠다”고 속인 후 피해자들이 임금 이야기를 꺼내면 “요즘 소개소 (자금) 사정이 안 좋다. 나중에 주겠다”며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떼인 임금이 B 씨 5800만 원, C 씨 6500만 원, D 씨는 500만 원 상당이다.

힘에 부친 피해자가 병원 진료를 위해 하선하면 사람을 붙여 제대로 쉬지도 못한 상태서 다시 일하도록 다그쳤다. 계약기간이 끝난 피해자는 소개소로 데려와 다른 어선에 탈 때까지 감시하고, 이 과정에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A 씨를 통해 피해자를 고용한 선주 중 일부는 피해자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5개월 남짓인 한 철 조업 기간 내내 육지에 정박하지 않았다. 부족한 선수품은 항포구 인근에 정박한 뒤 연락선(통선)을 통해 수급했다. 하지만 선주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피해자들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데다, 임금 체불이나 A 씨와 사전에 공모한 정황도 없기 때문이다.

통영해양경찰서 수사팀이 서해 꽃게잡이 통발어선 임금착취 피해자들을 찾아가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통영해양경찰서 제공 통영해양경찰서 수사팀이 서해 꽃게잡이 통발어선 임금착취 피해자들을 찾아가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통영해양경찰서 제공

작년 8월, 피해자 지인을 통해 관련 첩보를 입수한 해경은 A 씨 사무실 압수수색 후 1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업계 큰손’의 실체를 밝혀냈다. 조사 결과 A 씨는 20년 전부터 불법 소개소를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구속에 앞서 이미 동종 전과로 6번이나 처벌 받았다. 통영해경 이정석 수사과장은 “업계에선 나름 알아주는 큰손으로 통했다”며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해 계속 불법을 반복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B 씨 등을 포함해 A 씨가 불법으로 알선한 어선원만 140명. 소개비로 1억 원 상당을 챙겼다. 여기에 일반 선원 3명과 짜고 1년간 승선하는 조건으로 선주에게 선급금을 받아 놓곤 한 달도 안 돼 달아나는 수법으로 총 4차례에 걸쳐 1억 2000만 원을 챙기기도 했다. 이 돈은 A 씨와 공범이 ‘6 대 4’로 나눴다.

이번 수사에서 해경이 확인한 범죄 수익금은 4억 원 상당이다. 이 중 대부분을 인터넷 불법도박과 유흥비로 탕진했다. 이를 토대로 해경은 A 씨에게 준사기·직업안정법·상습도박 등 7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이정석 과장은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인권유린과 임금착취 사범에 대한 수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피해자들은 경남발달장애인지원센터와 연계해 가족에게 인계 후 보호조치를 받고 있다”면서 “유사한 피해나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전문기관 등과 고민해 방안을 찾을 필요도 있다”고 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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