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갱구를 열어라"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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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지금 일본 탄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바다 밑으로 갱도가 뚫려 어선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일본 조세이(長生) 탄광 조선인 강제 노동자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20세기 초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는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많은 탄광이 운영됐다. 1932년 문을 연 조세이 탄광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이곳은 해저 탄광으로 많은 조선 노동자들이 강제 징용돼 일했다. 그들은 비좁고 무더운 갱도에서 반라의 상태로 감시와 통제 아래 하루 12시간씩 석탄을 캐야 했다.

조세이 탄광 사고는 1942년 2월 3일 발생했다. 사고 며칠 전부터 갱도에 물이 차올랐지만, 일본 탄광 회사는 조선인들을 매질하며 계속 작업을 강요했다. 이로 인해 조선인 136명 등 모두 183명이 강제 수장됐다. 현재 우베시 니시키와 마을 해안가 100m 떨어진 곳에는 지름 2.8m의 원형 콘크리트 배수구 기둥 두 개가 물 위로 솟아 있다. 당시 참사 현장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구조물이다.

사고 이후 탄광 회사는 없어졌고, 일본 정부는 80년이 넘도록 시신 수습은커녕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조선인을 강제로 조세이 탄광에 투입했다는 편지와 증언이 남아 있지만, 일본 정부는 사과나 진상 규명, 유해 발굴 작업 하나 하지 않았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 유골 반환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이때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한데 올해 6월 부산 성모여고 학생·교직원들이 학교와 자매결연을 한 야마구치현 사비에르고교 요청으로 조세이 탄광 유골 발굴 조사 서명운동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번엔 좀 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최근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조세이 탄광에서 82년 전 수몰된 조선인 등 183명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갱도 입구(갱구)를 찾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내 한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전쟁 동안 조선인을 동원한 일본의 탄광·광산 사업장은 무려 800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 광산은 수많은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하시마 탄광(군함도), 사도광산, 가야누마 탄광 등 우리가 기억하고, 찾아내야 할 진실은 너무도 많다. 조세이 탄광 역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아픔이자 과제다.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의 죽음이 아직도 바닷물 속에 있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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