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연예술 도시를 가다] 국가·장르 '장벽' 걷자 전 세계 예술가 찾아왔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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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탈리아 피렌체: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

31주년 이탈리아 대표 축제
장르·문화적 융합이 ‘핵심’
다양성·포용성은 성장 동력
전통 기반으로 새로움 더해
도시 전체가 축제 현장으로

③이탈리아 피렌체: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


이탈리아 피렌체는 대표적인 문화도시다. 중세 유럽의 금융 중심지였던 피렌체는 성장한 금융업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운다. 금융업으로 부를 쌓은 메디치 가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예술가를 전폭 지원했고 그 결과 르네상스가 이곳에서 시작됐다. 피렌체 두오모로 알려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두오모, 우피치 미술관 등에는 문화도시 피렌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피렌체 인구가 40만 명이 채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피렌체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1982년 도시 전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지역 축제 넘어 유럽의 축제로

피렌체에는 매년 열리는 이탈리아 최대 규모 문화 행사인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Fabbrica Europa Festival)이 있다. 1994년 처음 시작된 이 축제는 30년의 세월을 거치며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사랑받는 공연 예술 축제로 자리 잡았다. 무용을 중심으로 음악, 연극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공연을 선보인다. 올해로 31주년을 맞은 축제는 9월 13일 개막해 이달 15일까지 약 한 달간 행사를 이어간다. 올해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한국 등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들이 40여 개의 공연을 선보인다. 도시 전체가 축제 현장으로 바뀌어 행사 기간 중 피렌체 곳곳에서는 다양한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도시 피렌체에서 시민들이 거리 버스킹을 관람하는 모습. 탁경륜 기자 이탈리아 도시 피렌체에서 시민들이 거리 버스킹을 관람하는 모습. 탁경륜 기자
이탈리아 도시 피렌체에서 시민들이 거리 버스킹을 관람하는 모습. 탁경륜 기자 이탈리아 도시 피렌체에서 시민들이 거리 버스킹을 관람하는 모습. 탁경륜 기자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이 지향하는 가치는 ‘개방’이다. 유럽의 문화를 이탈리아에서 꽃 피우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이 축제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문화예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르네상스가 피렌체에서 시작됐듯, 피렌체에서 현대 공연 예술의 변화를 주도하고 싶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유럽연합(EU)도 행사의 취지에 공감해 각종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이어왔다.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유럽연합의 축제 지원프로그램인 ‘Strand 1.3.6’에 선정됐다. 이후 각종 지원사업을 거쳐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헝가리 등의 국가와 함께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무용단이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에 참석해 공연을 선보였다. 국경을 뛰어넘어 다양한 국가의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아티스트들이 기다리는 무대이기도 하다.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은 올해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아 부산국제연극제와 함께 협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각 축제에서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고 예술가들을 서로 교류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부산국제연극제는 지난 5월 열린 제21회 연극제에 ‘글로벌 프로그램’을 신설해 우수 예술가의 해외 진출을 지원했다.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의 루카 디니 회장은 지난 5월 직접 부산을 찾아 5개의 작품을 관람하고 1개의 작품을 선정했다. 그 결과 99아트컴퍼니의 ‘제(祭)_타오르는 삶’이 이탈리아에 초청됐다.


공연 'invisibli' 포스터.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 제공 공연 'invisibli' 포스터.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 제공

■장르 한계 뛰어넘은 새 공연들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개방성은 단순히 ‘지역성의 개방’에 한정되지 않는다. 축제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융합된 공연을 선보이며 새로움을 찾아 나선다.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연출가 오를레앙 보리(Aurélien Bory)의 ‘invisibili’은 축제가 추구하는 가치가 잘 드러난 공연이다. 오를레앙 보리는 서커스, 춤, 연극, 음악 등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제작해 온 인물로, 이번 작품에는 무용, 미술, 뮤지컬 등의 특징이 보기 좋게 섞여 있다.

그는 15세기에 그려진 ‘죽음의 승리’라는 벽화에서 영감을 얻어 이 그림을 배경으로 공연을 제작했다. 중세 흑사병 시기를 배경으로 제작된 이 벽화를 현대의 맥락에 맞추어 이민자들의 죽음, 암, 자연재해와 같은 재앙을 표현했다. 출연진들은 가로 6m, 세로 6m 크기의 그림 아래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거대한 그림이 무대 바닥을 향해 넘어지거나 휴대폰 화면을 극장에 설치된 화면에 비추는 등의 연출도 돋보였다. 벽화 그림을 단순히 배경 설명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춤이 펼쳐지는 무대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공연은 2023~2024시즌 최고의 공연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에서 권위 있는 비평가상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피렌체 도시 곳곳에서는 무용 공연에 연극적 요소를 도입하거나 색소폰, 바이올린 등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무용수들이 움직임을 선보이는 등 장르를 혼합한 공연이 펼쳐졌다.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 측은 유럽 전역을 돌며 이러한 공연을 발굴해 낸다.

공연 'invisibli' 커튼콜 모습. 탁경륜 기자 공연 'invisibli' 커튼콜 모습. 탁경륜 기자
99아트컴퍼니 '제(祭)_타오르는 삶' 공연 장면.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 제공 99아트컴퍼니 '제(祭)_타오르는 삶' 공연 장면.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 제공

■부산도 ‘경계 허물기’ 시도해야

부산에는 부산국제연극제, 부산연극제,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등 다양한 공연예술 축제가 있다. 각 축제는 조금씩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장르의 경계가 공고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개방성은 부산에서도 의미가 있다.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힘을 합친 공연을 선보인다면 고유한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예술가와 해외 예술가가 함께 협업한 공연을 관객에게 선보이거나,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여러 축제를 혼합해 대형 공연예술 축제를 만드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다. 이미 영화·영상계에서는 출판, 영화, 드라마 등 형식을 가리지 않고 IP(지식재산권)를 기반으로 콘텐츠가 제작되는 모양새다. 최근 국내에서도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협업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만큼 예술가들의 협업을 돕는 시스템도 필요해 보인다. 루카 디니 회장은 “이제 관객들은 더 이상 공연장에서 한 가지 경험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무용 공연이라 하더라도 움직임만 보지 않고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공연장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경험을 기대한다”며 “우리 축제에서는 무용에 연극을 섞는 방식 등으로 여러 형태를 융합한 공연을 선보이는데 이는 사람들이 공연장에서 다양한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공동기획 : 부산일보, 부산문화재단

이탈리아/피렌체=탁경륜 기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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