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이 HUG 속인 보증계약… 엇갈리는 피해자 보상 판결
전세사기 피해자 보증금 요구 소송 패소
5월 지급 판결과 배치… 성격 규정 관건
임대인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속여 보증계약을 체결한 경우 전세 사기 피해자인 세입자가 HUG로부터 보증금을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유사한 사건에 대한 앞선 판결(부산일보 5월 30일 자 3면 보도)과는 엇갈린 결과가 나온 것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서근찬 부장판사)는 최근 전세 사기 피해자 5명이 HUG를 상대로 낸 보증채무금 지급 요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 5명은 2021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임대인 A 씨와 보증금 1억 2500만~1억 6000만 원으로 각각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A 씨는 임대차 기간 중인 지난해 3월 7일 HUG와 자신의 건물 임대차와 관련한 임대보증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A 씨는 이 과정에서 다른 임차인 2명의 보증금 1억 2500만 원을 2000만 원인 것처럼 허위로 계약서를 만들어 임대보증을 받았다. 건물을 살 때 은행에서 빌린 돈과 세입자로부터 받은 보증금의 총합이 건물 가치를 넘을 경우 보증계약이 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5개월 뒤 A 씨의 전세 사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HUG는 A 씨가 허위 서류를 제출한 것을 알게 됐다. 이후 A 씨와 임차인에게 보증금 계약이 취소됐다고 통지했다.
재판부는 HUG가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HUG에게 책임이 없다고 본 이번 판결은 보증계약 성질을 ‘제삼자를 위한 계약’이라고 봤다. 제삼자를 위한 계약에서는 세입자가 계약의 연장선에 있는 수익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수익자는 계약 자체가 취소되거나 무효가 되면 보호받지 못한다.
반면 올해 5월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HUG가 보증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판결은 보증계약 성질을 보험법상 ‘보증보험’으로 봤다. 이 경우는 설사 임대인이 HUG를 속여 보증계약을 체결했더라도 HUG에 배상 책임이 있다. 세입자가 보증보험 계약의 담보적 기능을 신뢰해 새로운 이해관계를 가졌다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법리다.
현재 ‘보증 계약’의 법적 성질에 대한 대법원의 명확한 판례가 없다. 결국 하급심이 법적 성질을 달리 보며 두 판결이 엇갈렸다.
피해자들은 이번 판결이 앞으로 남은 HUG 관련 소송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우려했다. 피해자 가족 조 모(33) 씨는 “이번 건을 포함해 피해자들의 소송 총 17건이 진행 중인데, 전세금을 잃은 피해자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걸며 사비로 진행 중이던 마지막 방법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보증보험에 가입해도 집주인 잘못이 발견되면 언제든지 취소가 가능하고 HUG는 책임조차 지지 않는다는 판결은 임차인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호소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