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 새 총리에 이시바, 한일 관계 실질적 진전 있어야
온건파 당선… 과도한 기대는 금물
대일 외교 ‘국익’ 중심 꼼꼼히 점검을
일본 집권 자민당의 새 총재이자 차기 총리에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선출됐다. 27일 실시된 총재 선거 결과 이시바는 1차 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에 뒤져 2위에 그쳤으나 결선에서 과반 득표해 역전에 성공했다. 집권당 총재가 내각의 총리를 겸하는 관례에 따라 이시바는 다음 달 1일 국회 표결을 거쳐 총리에 공식 취임한다. 그는 한일 문제와 관련해서 온건파로 분류되지만 군비 확장을 주장하는 등 기본적으로 보수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외교 정책의 큰 틀이 바뀌진 않을 전망이다. 우리 정부가 향후 대일 외교에서 실익을 거둘 수 있도록 철저한 점검과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시바 차기 총리는 아베 신조 총리 시절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아베의 숙적’으로 불렸다. 줄곧 당내 비주류의 길을 걷다가 이번 선거에서 아베 후계자로 지목된 다카이치를 꺾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도 비교적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2017년 위안부 문제는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했고, 2019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때는 일본의 패전 후 전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반한 감정 편승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스타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만큼 그의 당선은 일단 한일 관계 개선의 청신호로 여길 만하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새 총리에 취임한 뒤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 나아가 강력한 당내 보수 기류를 뚫고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군비 확장과 자위대의 헌법 명기에 적극적인 그의 안보관 역시 한국과 갈등을 빚을 요소를 안고 있다. 총재 선거 기간 내내 아시아판 나토 창설과 일본·미국의 핵 공유 등의 주장을 펼치더니,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에 게재한 27일 자 기고문에서도 중국·러시아·북한의 핵 연합 억제를 위한 일본의 핵 반입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일본의 군비 확장과 군사 대국화 욕심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사안임이 분명하므로 정부의 확실한 대처가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대일 외교 분야에서 양보와 배려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처는 나오지 않았다. 이시바 내각이 한일 과거사 현안 앞에서 이전보다 전향적으로 나올지 아니면 역량의 한계를 보여줄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일본의 호응에 기대는 대신 철저하게 국익의 관점에 따라 국민 지지를 받는 대일 정책을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이시바 차기 총리도 한일 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사도광산 관련 후속 조치도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