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짐 감수한 부산 모더니즘 시를 끌어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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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원 시 평론 <아무것도…>
지역 작가 차별이 집필 동기
숨은 진주 같은 작품에 놀라


김수원 시인이 부산 모더니즘 시인들의 시와 그들의 자취를 끌어안는 평론집 <아무것도 아닐 경우>를 냈다. 김수원 시인이 부산 모더니즘 시인들의 시와 그들의 자취를 끌어안는 평론집 <아무것도 아닐 경우>를 냈다.

이런 책을 누가 읽나 싶은데, 요즘 꽤 읽힌다는 시 평론집이 있다. 2021년 부산일보 시 부문으로 등단한 김수원 시인의 <아무것도 아닐 경우> 이야기다. 시인이 첫 시집도 내기 전에 평론집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심상치 않다. 머리말부터 ‘등단 첫해 첫 원고료가 시 두 편에 5만 원이었다’는 도발적인 글로 시작한다. 202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는 6개 부문에 걸쳐 1321명이 응모했는데 시 응모자가 46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성복 시인은 일찍이 ‘시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갈파했다. 김 시인은 시집은 서점에서도 구석으로 내몰린 지 이미 오래된 시절에 어째서 대한민국에는 시인이 넘쳐나는 것인지 묻는다.

표지에는 ‘기꺼이 버려짐을 감수한 부산 모더니즘 시인들의 자취를 끌어안는다’는 소개글이 실려 있다. 신진 시인이 자기 시는 쟁여 두고, 지역 시인들의 시부터 챙기게 된 사연이 있었다. 김 시인은 천신만고 끝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지만 중앙지와 지역지 등단에 따라 다르게 조명되는 현실에 자존심이 많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책장에 꽂힌 시집들을 돌아보니 부산 지역 시인의 시집이 별로 없었다. 그때부터 지역 작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시집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세상에 널린(?) 게 시집이라지만 부산 지역 시인에 관한 정보는 너무 없었다. 서울과 지역, 어디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정보 불균형이 심했다. 시집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시가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으면 나았다. 그마저 없으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기록, 안민, 양아정, 박서영, 송진, 안차애, 김사리, 박길숙, 강미영, 권정일, 석민재, 유지소, 박춘석, 신정민, 정안나, 채수옥, 김예강, 전다형, 유진목, 박영기. 김 시인이 시만 보고 골라내 이 책에서 평론한 부산 지역 시인들이다. “모두가 유명 시인들 못지않았고, 되레 수준이 더 높은 작품이 너무 많았다”는 게 그의 총평이다.

사실 누군가가 알아주고 인정해 준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다. 특히나 시인들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평론집에 소개된 A 시인이 김 시인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아무도 읽어 주지도 써 주지도 않는 시가, 선생님의 손을 통해 정리가 되고 독자로 가는 통로가 되었네요. 부산 시인들 시집이 많아 더 반가웠습니다. 시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고맙고 영광입니다.’ 알바를 가기 전에 새벽에 일어나 적은 글이라고 했다.

또 A 시인은 “평론이 이렇게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글에도 “편안하고 친근한 문체를 지향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그건 시인들의 생각이다. 모더니즘 시인들을 소개한 시 평론집이 쉽기만 할 리가 없다. 이 바쁜 세상에 난해한 모더니즘 시를 왜 읽어야 할까?

김 시인은 “단박에 뭐가 오면 그냥 넘어가게 되니 재미가 없다. 오래 머물게 하는, 나를 붙잡는 그런 시가 좋다. 쌓아 놓은 벽을 시간을 들여서 하나하나 벗기는 재미를 느껴 보라”고 말했다. 분명 국어인데 난도 높은 수능 수학 문제를 만났을 때 느낌이 나는 시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꾹 참고 읽다 보면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 같은 가슴을 치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시가 조금씩 내 쪽으로 옮겨 온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김수원 시인의 평론집 <아무것도 아닐 경우> 표지. 김수원 시인의 평론집 <아무것도 아닐 경우>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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