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도 못 봤는데…” AI 디지털 교과서 졸속 시행 우려
내년 3월 도입 앞두고 논란 가중
교육부, 시범 실시 없이 속도전
익숙하지 않은 교재 활용 한계
학교 현장 “도입 시기 연기해야”
울산교육감 “시범 적용 후 확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교육부는 내년 3월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앞두고 검정 심사를 마치는 등 사업 속도를 내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도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교원은 전면 시행 6개월 전까지 디지털 교과서 실물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수업에 활용하기란 어려움이 크다고 주장한다.
교육부는 내년 3월부터 초3·4, 중1, 고1 학생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 디지털 교과서는 수학·영어·정보·국어(특수교육) 교과에 우선 도입되며, 2028년까지 국어·사회·과학 등 모든 교과에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3년간은 종이 교과서와 디지털 교과서를 병행한 뒤, 2028년부터는 디지털 교과서로 전면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 내년 3월부터 교실 현장에 도입할 디지털 교과서 검정 심사를 마쳤다. 교과목별로 △수학 5곳 △정보 4곳 △영어 9곳 업체가 검정을 통과했다. 오는 11월 29일 최종 선정 결과가 나온다. 교육부는 12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겨울방학 시기에 전국 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과서 활용 교육을 집중 실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면 시행 6개월을 앞두고 디지털 교과서 실물조차 보지 못해 수업 주교재 또는 보조교재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부산 한 초등학교 A 교사는 “교사들이 익숙하지 않은 교재를 짧은 수업 시간에 당장 활용하기는 어렵다”며 “시범 실시 기간을 거쳐 교실에 도입하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서울교사노조가 ‘AI 교과서 교원 역량 강화 연수’에 다녀온 교사 1794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94%가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에 반대했다.
일부 시도 교육감도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에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달 26일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천창수 울산시교육감과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은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연기하자고 주장했다. 두 교육감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불안과 학습 데이터 유출 문제 등을 이유로 들며 시범 적용 후 전면 확대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디지털 교과서는 ‘학습자 중심의 맞춤형 학습 체계 전환’을 목표로 도입됐다. 일률적인 국정·검정 교과서 체계에서 벗어나 ‘500만 학생을 위한 500만 개의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다. 학생마다 태블릿 PC가 제공되고, 학생별 학습 수준과 이해도에 따라 난이도가 다른 문제와 학습 교재가 해당 학생의 태블릿 PC에 공급되는 것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학부모, 교사와 만나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은 학생들의 미래 핵심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수업을 바꾸자는 것”이라며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된 학부모들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소통·경청하겠다”고 밝혔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