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롯데, 위험하거나 위대하거나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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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진 디지털총괄부장

가을야구 실패에도 홈경기 만원
헤비팬에서 라이트팬 중심으로 증가
성적 외 다른 요소들이 흥행 견인
전통과 팬심 강점 부산의 중요 자원

최근 큰 결심을 했다. 자녀들을 ‘롯린이’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롯린이란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어린이팬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롯린이를 만드는 데 무슨 큰 결심까지 필요할까 싶다. 하지만 주변에서 롯데 경기 결과에 그날 기분이 좌우되는 이들을 보면 선뜻 야구를 소개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황성빈의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에 후회도 했다. 황성빈의 응원가는 귀에 딱딱 꽂혀서 집중력을 흩트린다. 그런 측면에서 잘 만든 응원가인 것은 확실하다. 또 롯데 성적보다 주식 등락에 기분이 오가는 것이 삶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재테크가 이르다면 우승권에 있는 팀의 팬이 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슬프게도 롯데는 가을야구를 올해도 실패했다.

가을야구에 실패한 팀의 마지막 경기는 늘 초라했다. 과거 자리가 텅텅 비어 옆으로 누워 야구를 보는 팬들이 방송에 잡힌 적도 있다. 심지어 사직야구장 외야석에서 자전거를 타는 ‘전설의 사진’도 있다.

롯데는 역대 2위 최소 관중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2년 10월 19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경기로 입장객은 69명이었다. 이날 경기는 롯데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였다. 롯데는 마지막 홈 경기를 위해 롯데 자이언츠의 로고가 박힌 옷이나 모자 등 굿즈를 가진 팬들을 무료로 입장시켰다. 그럼에도 불구 100명도 경기장을 찾지 않은 셈이다. 당시 롯데는 133경기를 치르는 동안 35승 1무 97패 승률 0.265를 기록했다.

2018년 이후 7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했기에 올해도 팬들의 실망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분위기는 달랐다. 사직야구장의 마지막 두 차례 홈경기는 2만 2000여 석이 모두 매진됐다. 올해 프로야구는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넘겼는데 사직야구장도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간 셈이다.

1000만 관중 시대의 배경에는 야구를 가볍게 즐기는 ‘라이트팬’의 증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예전 ‘헤비팬’들은 기록지를 직접 기록하며 선수들을 분석하고 다녔다. 애정도 크고 지식도 많아 성적에 민감했다. 사실 즐길거리도 경기 내용, 성적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기 내용이 좋지 않으면 분위기가 살벌했다. 2009년 영화 〈해운대〉의 모습이 허구가 아니다. 설경구는 삼진을 당하고 돌아오는 이대호를 향해 “마, 이대호. 니 오늘 병살타 치러 왔나. 병살타 마이 치니까 배부르나. ××야”라고 인신공격을 한다. 영화가 괜히 오버를 했냐고? 아니다. 펜스를 기어오르는 팬, 족발의 뼈를 던지는 팬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반면 최근에는 기본적인 야구룰만 아는 라이트팬도 많다. 경기 중간중간 진행되는 이벤트 참가자의 모습만 봐도 남녀노소 다양하다. 야수선택(야수가 타자 주자를 아웃시키는 대신에 앞 주자를 아웃시키고자 하는 플레이)과 같은 살짝 어려운 상황들이 발생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느라 웅성웅성하기도 한다. 몸에 맞는 볼 상황에서도 반응은 갈린다. 진루가 되어 기뻐하거나 선수의 투지를 응원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맞았다며 일단 화부터 낸다.

SNS에서도 사직야구장 먹킷리스트(먹다와 버킷리스트의 합성어) 등 새로운 문화가 눈에 띈다. 이쯤되면 즐기기에 야구만큼 가성비 좋은 문화가 없다. 주말 저녁 친구를 만나 먹킷리스트를 하나 해결하고 외야석의 경우 1만 원 정도면 최소 3시간은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다 온다. 게다가 이기기라도 하면 가심비도 끝내준다.

최근에는 이러한 분위기를 즐기려 헤비팬들의 전유물이었던 원정 응원에 동참하는 라이트팬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원정을 가서 그 지역의 먹킷리스트를 해결하고 야구를 보고 오는 식이다. 여행을 가듯 즐겁게 가서 신나게 응원하다 오는 셈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프로 원년부터 리그에 참여하여 지금까지 팀 명칭을 유지하고 있는 유이한 팀이다. 그만큼 사직야구장에 얽힌 이야기도 많고 팬들의 애정도 크다. 여기에 부산이 가진 매력이 더해져 라이트팬들이 즐길 만한 다양한 요소들이 어느 구단보다 많은 팀이라고 자부한다. 성적만큼이나 문화적 요소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이는 야구를 즐기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사직야구장 재건축이 진행되면 팬들과 함께 더 편하고, 더 흥미롭게 롯데 자이언츠의 홈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직야구장에서 보는 롯데의 홈경기가 성적과 상관없이 원정 응원을 오고 싶게 만드는 부산의 소중한 자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들에게 스트레스 유발하는 위험한 유산이 아닌 부산을 대표하는 위대한 유산을 넘겨줬기를…. 20여 년 뒤 아들에게 “왜 절 야구장에 데려가셨어요”라는 원망을 듣고 싶지 않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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