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굴욕에 강경파 승리… 이란의 공격은 ‘외길 수순’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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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수도에서 국빈 암살당해
지원하던 테러세력 잇따라 피격
군부 등 강경파 하메네이 압박
이스라엘에 중동전쟁 ‘빌미’ 제공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애쉬켈론 상공에 이란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날아오자 방공시스템인 ‘아이언돔’이 이를 요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애쉬켈론 상공에 이란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날아오자 방공시스템인 ‘아이언돔’이 이를 요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보복 공격은 최근 잇따른 ‘굴욕’을 당한 이란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이 친이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무릎 꿇린 후 총구를 이란으로 돌리기 전에 ‘이란의 힘’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고, 시급하게는 공습에 시달리고 있는 헤즈볼라의 숨통을 틔워줘야 했다는 것이다.

이란이 '저항의 축' 지도부를 제거해온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놓고 저울질하던 끝에 결국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면서 중동의 오랜 앙숙 간 전면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이란의 보복 결정은 최고위층이 며칠간 격렬한 토론을 한 끝에 나온 것으로, 군 지휘관들이 결국 이겼다고 보도했다. 3명의 이란 당국자에 따르면, 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게 ‘이란이 강하게 보이고 싶다면 미사일 공격이 유일한 행동 방침’이라고 설득했다.

하메네이의 결정이 금방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공습에 폭사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테헤란 하메네이 자택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강경파인 군부와 온건파인 대통령 측 인사 간에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군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저항의 축’ 세력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란과 중동 내 동맹 세력이 약하다는 인식을 뒤집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던 까닭이다.

이 같은 판단의 배경에는 지난 1일 이스라엘이 18년 만에 레바논 남부로 지상군을 투입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더 타임스는 “최근 굴욕을 당한 이란은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란은 이번 보복 공격을 단결의 기회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은 “하메네이가 이번주 테헤란에서 금요 예배를 집도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설교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메네이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특별한 상황에서만 금요 예배를 집도한다. 그의 예배 집도는 2020년 이란의 국민영웅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국에 암살됐을 때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이란의 이번 이스라엘 공격으로 그간의 대리 세력을 통한 대결 양상이 무너졌다. 숙적간 정면 충돌이 또다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져 제5차 중동전쟁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후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보복) 계획이 있으며 시간과 장소를 결정해 행동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주로 팔레스타인, 레바논, 예멘, 이라크 및 시리아에 있는 '이란의 대리 세력'을 통해 간접적인 싸움을 이어온 '불구대천 앙숙'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면전 가능성이 커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언급했다.

이번에도 이란의 미사일 공격 저지에 동참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명확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이란의 공격이 격퇴되었으며 효과적이지 못했다. 미군은 이스라엘의 방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며 "미국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완전히, 완전히 지지한다. 실수하지 말라"고 이란에 경고했다.

앞서 전날 미국은 전날엔 중동 주둔 미군 병력 확충 계획을 밝혔는데, 여기에는 F-22, F-15E, F-16, A-10 등 미군의 공군력 증강이 포함됐다. 미국은 또 에이브러햄 링컨 항모강습단(CSG)을 계속 중동에 주둔시키고, 와스프 상륙준비단(ARG) 및 해병원정대(MEU)의 동부 지중해 작전을 지속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보복 공격'을 예고한 이란에 대한 경고 차원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우려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중동 내 확전을 부를 수 있는 이란의 공세를 일제히 비판한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날 오전 중동 상황 관련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엑스(X)에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을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며 "중동의 치명적 확전의 악순환은 지금 당장 중단돼야 한다. 전은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는 "현재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 확전과 공격, 직접적 분쟁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며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반면 러시아는 이란의 공격 감행 책임을 미국의 '중동 정책 실패' 탓으로 돌렸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텔레그램에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백악관의 이해하기 어려운 성명은 미국이 위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 완전히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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