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좋아하는 춤 추고 많은 인연들과 함께해 큰 행복” 영남교방청춤보존협회 박경랑 이사장
부산보존회 창립 29주년 맞아
현 시대 맞는 춤으로 대중화
김창후 외증손녀로 4세 때 입문
서울 등 전국 규모 활성화 앞장
“영남교방의 춤을 알려보려고 서울로 올라온 지 30년, 아직도 저는 조심스럽게 초심으로 버선발을 디디고 있는데 어느새 제자들이 성장해 제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승으로서 대견하고 감회가 깊을 따름입니다.”
지난달 24일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에서 열린 고성오광대 탈판의 후예들이 펼치는 ‘추다, 돌다, 뛰다, 날다’ 공연에 춤사위를 보인 영남 교방청춤의 박경랑(영남교방청춤보존협회 이사장) 명무의 소감이다.
이날 공연은 올해로 국가무형유산 지정 60돌을 맞은 고성오광대 후예들이 펼치는 신개념 놀이판이다. 고성오광대놀이 초대 보유자 고 김창후 선생의 외증손녀인 박경랑 명무가 총연출과 구성을 맡아 고성오광대 이수자와 한마당을 꾸몄다. 공연은 박 명무를 중심으로 ‘헌무’를 시작으로, 덧배기춤, 문굿, 설장고·꽹과리, 교방소반놀음춤, 땅줄타기, 소고놀이, 버나놀이, 열두 발 상모놀이 등으로 이어졌다.
“제 걸음을 이어 제자들이 버선발을 제대로 디딜 수 있도록 든든한 지팡이가 돼 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영남교방춤을 널리 알리는데 꿋꿋하게 버팀목이 되어 준 제자들이 한 송이 한 송이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소리 없이 우는 새가 되어 묵묵히 바라보며 돕고픈 마음이 가득합니다.”
박경랑류 교방소반춤은 굿거리 장단에 맞춰 머리에 소반(작은 접시)을 얹고 걸어 나오면서 춤이 시작된다. 머리에 소반을 얹혀진 채로 호흡이 담긴 춤사위를 춘다. 자진몰이 장단에서는 흥겨운 소고놀이로 소반을 손에 들고 추는 동작으로 이어진다.
이 춤은 박 명무가 독보적인 존재로 영남 지역의 권번에서 추던 춤사위들을 그가 집대성해 정리한 것이다.
박 명무는 “어릴적 고성오광대 놀음의 증시조이자 초대 예능보유자인 김창후 외증조부의 잦은 교방 출입에 따라가 무릎팍 위에 앉아 신기한 무희의 어깨짓을 보며 느낀 기억이 오래가 춤맛을 깨우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앞서 지난 6월에는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에서 박경랑 총안무·구성·연출·출연의 박경랑의 춤 ‘구름위에 보내는 꽃편지’를 무대에 올렸다.
2014년에는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 에서 ‘장사익과 한국의 명인들 소리가 춤을 부른다’에서 소리꾼 장사익이 노래를 부르고 교방춤의 박경랑 춤을 추며 즉석 공연을 했다.
그는 경남 고성 출생(1961년생)으로 외증조부의 뒤를 이어 4세에 춤에 입문하여 영남 춤 맥을 잇는 춤꾼이다. 김수악 등 여러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춤에 자신만의 독특한 춤 기법을 더했다. 전통성 바탕의 현시대에 맞는 춤으로 대중화시켜 박경랑류영남교방청춤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박 명무는 용의 기운으로 백학처럼 부드럽게 춤춘다는 말을 들으며 춤사위를 펼쳤다. 구름을 깨뜨리듯 부드럽고 강한 기운의 아호 ‘운파’를 가진 그는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보존협회 이사장,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전수관 관장, 국립국악원 전통공연문화예술학교 교수,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1기 이수자이다.
제5회 서울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1997년)에서는 심사위원 18명 전원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전주대사습놀이 1995년 무용부분 장원, 1996년 36세에 제4회 서울 전통 공연 예술 경연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1995년 박경랑 전통예술단 창단 국내외 공연 을 해 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부산문화회관에서 명인·명무에 국악 아카펠라 더해진 ‘풍류탱고’를 가졌다. 풍류의 세 축인 명인 이생강의 대금, 명무 박경랑의 영남교방춤, 국악아카펠라그룹 토리스의 소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박경랑은 맨손에 부채를 들고 자유롭게 익숙한 동선의 춤을 전개한다.
그는 “사람들은 우리의 예인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그들이 너무 소중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춤과 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잘 가꾸고 존중의 예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박경랑 주도의 ‘풍류탱고’는 제목 선정에서 감지하듯 부산에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절정의 예능으로 맛깔나는 탱고를 완성한 느낌이었다.
“박경랑류 영남교방청춤 보존회가 창립된 지 29년이 됐습니다. 1995년 부산보존회를 시작으로 2002년 서울지회가 생기면서 전국 규모로 활성화 되기까지 회원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춤을 추고 많은 인연들과 같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이 큰 행복이라는 걸 가슴으로 느낍니다. 그 행복을 늘 무대 위에서 교방풍류놀음으로 놀아보려 합니다.” 그의 춤이 살아있는 이유다.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