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맥주 홉 넣은 막걸리
맥주의 역사는 길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4000년부터 맥주를 빚었다. 이집트 벽화에는 귀족들이 갈대를 빨대 삼아 단지에 든 맥주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맥주는 ‘마시는 빵’이었다. 살짝 구운 보리빵을 빻고 물을 섞어 걸쭉하게 만들어 자연 발효를 기다렸다. 빵 부스러기가 둥둥 뜨니 빨대가 필요했던 것. 피라미드 축조에 투입된 노동자에 일당으로 맥주를 지급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맥아당 특유의 단맛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대부터 쑥, 고수, 계피, 생강 등 허브나 향신료가 사용됐다. 덩굴 식물 홉(hop)이 등장한 것은 9세기 독일의 수도원에서다. 홉의 꽃잎에 있는 알파산(α-acid)이 쌉싸름한 맛도 내지만 방부제 역할도 한다. 유통 기한이 늘어나니 양조장은 대환영. 1516년 독일 ‘맥주순수령’은 양조 때 보리와 물, 홉만 사용하게끔 한정했을 정도로 홉은 맥주의 주재료 입지를 굳혔다.
홉이 다시 한번 주목받은 계기는 영국이 인도로 장기 수송하는 맥주의 산패를 막으려 홉을 잔뜩 넣기 시작하면서다. 이때 만들어진 페일 에일이 ‘인디아 페일 에일’(IPA)로 발전했다. 거대 맥주회사들의 라거(하면 발효)가 주류가 되면서 에일(상면 발효)은 잊혀졌다가 미국에서 수제 맥주 붐이 일어나면서 IPA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때 더블 IPA, 트리플 IPA, 임페리얼 IPA식으로 극단적 쓴맛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목하 옥토버페스트, 맥주 축제의 계절이다. 부산에서는 5~6일 벡스코 야외 광장에서 부산시 주최 부산수제맥주마스터스챌린지가 열렸다. 부산의 수제맥주 브랜드 8곳이 애주가의 평가를 받는 행사다. 양조장 4곳이 IPA를 출품해 여전한 인기를 보여줬다. 번외로 초청된 전통주 양조장 겸 교육장 ‘미리내협동조합’의 ‘홉 막걸리’가 눈길을 끌었다. 발효 중에 청주를 첨가하는 부의주 방식으로 술을 빚으면서 감귤 맛과 향을 내는 시트라 홉을 넣어 맛의 변주를 시도했다.
목 넘김 단계에서 알싸한 홉의 여운이 느껴졌다. 수제맥주 와일드웨이브의 김관열 대표는 “막걸리와 시트라 홉은 풍미가 어울린다”면서 “홉 용량을 늘려 확실히 차별화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조합 측은 ‘부산역전도가’로 이름을 바꾸고 홉뿐만 아니라 영도 조내기 고구마로 맛을 낸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소규모 양조장이니 가능한 도전이리라. 막걸리를 즐기는 방식이 늘어났다. 공장 막걸리의 획일성을 벗어난 막걸리의 다양성을 응원하고 싶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