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공예,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매력
40년 옻칠 한길 이현승 작가
예술기업과 새로운 도전 동행
외국 아트페어서 칠공예 전파
최근 기자를 긴장하게 만든 메일이 도착했다. “40여 년 한길만 판 장인, 부산의 이현승 작가를 아십니까.” 지역에서 40년 작업을 했다는데 솔직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미술 담당 기자로서 중요한 걸 놓친 기분이 들어 당장 연락했다.
이현승 작가와 관련해 먼저 만난 이는 크래프트 나비의 박진솔 대표였다.이현승 작가 마케팅과 홍보를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연예인도 아니고 지역에서 순수미술 작가로 활동하는데 매니지먼트 회사가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이 작가를 소개하기 앞서 박 대표가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저는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예술 분야에서 일한 적도 없습니다. 법학을 전공했고 영국에서 유학한 후 UN 관련 국제기구에서 일했죠. 자연스럽게 기후 위기, 환경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이 분야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회사를 창업했고, 그게 크래프트 나비입니다.”
이현승 작가는 크래프트 나비가 계약한 1호 작가였다. 이현승 작가는 40년간 전통 옻칠 작업을 해오고 있다. 부산의 대학에서 칠공예를 전공한 후 일본 국립도쿄예술대학을 수석 졸업했다. 이 작가의 졸업 작품은 됴쿄예술대학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고, 1996년 세계 최대 칠공예대전인 '이시가와 국제 칠예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대상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 이미 이현승 작가는 칠공예 분야에선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당장 이 작가의 모교인 도쿄예술대학에서 이 작가를 붙잡았다. 교수까지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한국에서 더 의미있는 작업을 하자 싶어 고향인 부산으로 복귀했다.
박 대표는 2년 전 우연히 칠공예의 매력을 알게 되며 자신의 추구하는 가치를, 칠공예를 통해 현실에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칠공예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되어 왔을 정도로 역사가 있죠. 모든 재료가 자연에서 옵니다. 현대 미술로 봐도 뛰어난 미학을 자랑합니다. 순수 예술로도, 기능적인 생활용품으로도 가능합니다. ”
박 대표와 첫 만남에서 칠공예, 옻칠의 종류, 이현승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후 이현승 작가의 작업실에서 직접 마주한 작품들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머! 어머! 이것도 옻칠공예인가요? 대리석 작품 같아요! 이건 목조각으로 보여요. 도자기 같은 작품도 있네요.” 인사보다 먼저 칠공예 작품에 대한 감상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흥분한 기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 작가가 차를 들고 나왔다. 차 받침부터 약과 그릇, 찻잔, 숟가락과 포크까지 모두 이 작가가 직접 만든 옻칠공예품이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된 칠공예의 세련된 문양이 돋보였다. 박 대표가 크래프트 나비의 네이버 스토어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고 귀뜸해준다.
“혼자 작업하고 제자를 키우기 위해 강의를 열심히 다녔더니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요. 그런데 정작 칠공예를 좀 더 대중적으로 알리는 걸 못했습니다. 30대의 박 대표가 칠공예 가치를 인정해주고 함께 해보고 싶다는데 울컥 하더라고요.”
이 작가는 학부 시절 옻칠의 따뜻하고 깊은 색채에 매료돼 칠공예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옻칠은 예술적인 매력에 더해 인체에 무해하고 방습 방충 방독 소취 향균 방부효과를 가진 천연 그 자체였다. 작품으로 탄생하려면 바르고 건조하고 다듬는 수 십 차례의 행위를 반복해야 한다. 이 작가는 작업이 수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말로 시간의 미학을 담은 칠공예의 매력을 설명했다.
이 작가와 박 대표의 협업은 다행히 좋은 결과로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이현승 작가의 작품은 큰 관심을 받았다. 칠공예 중 가장 어렵다는 건칠 작품, 기지 시리즈는 독특한 조형미로 순수 미술의 가치를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들었다. 호텔방 곳곳에 배치된 옻칠 공예품도 현대 인테리어와 너무 잘 어울렸다.
이 작가와 박 대표는 현재 또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으로 외국 아트페어에 칠공예 작품으로 컬렉터들을 만날 계획이다. 당장 10월말에 열릴 두바이 국제아트페어에 나간다. 한국의 명품이자 현대 미술로서 이 작가의 옻칠 작품이 세계인에게 선보이게 된다. 연말 베트남 국제아트페어도 참가 신청을 끝냈다.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칠공예 강습 프로그램도 열고 다른 분야와 협업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ESG와 예술은 인간에게 변하지 않을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 작가와 박 대표가 일으킬 날갯짓이 한국 전통 미술의 비행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