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돌멩이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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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 이영인 작가 한국 첫 개인전
갤러리 하스에서 25일까지 열려
극사실적인 표현으로 돌멩이 그려
시간의 흔적을 보며 명상하는 기분

이영인 ‘existence’ 연작 시리즈. 갤러리 하스 제공 이영인 ‘existence’ 연작 시리즈. 갤러리 하스 제공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자주 어떤 상황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문구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그 돌멩이의 크기가 크든 작든 호수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파동은 점점 커져 결국 걷잡을 수 없이 호수 전체를 뒤덮는다. 일반적으로 파문을 일으킬만한 사건이나 계기를 의미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갤러리 하스에서 진행 중인 이영인 작가의 전시를 보고 나오며 문득 이 문구가 떠올랐다. 담담하게 캔버스에 돌멩이 하나를 그린 작가의 작품은 잔잔했던 내 마음에 이 정도의 큰 파동을 일으킨 것 같다.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200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이 작가는 줄곧 프랑스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갤러리 전시가 이어졌고 유럽의 고정 팬도 생겼지만, 정작 한국과 전시 인연이 닿지 않았다. 어느새 50대 초반의 작가가 됐지만, 이번 부산 전시가 한국 첫 개인전이다.

사실 전시장을 찾기 전 이 작가의 전시 이미지를 미리 접했다. 한국에서 전시 이력이 없어 사전 정보를 충실히 확인한 후 전시장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치 사진을 찍은 듯 극사실적인 표현으로 돌을 그렸다. 정말 사진 작품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돌을 완벽하게 표현한 걸 보면 일단 그림에 대한 재능을 뛰어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이미 유행이 지난 극사실주의 회화에 그렇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갤러리 하스에서 직접 작품을 접하며 미술은 무조건 직접 봐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LCT상가 3층에 위치한 하스 갤러리는 반대쪽 복도 끝에서 전면 유리가 보였다. 전면 유리에 걸린 작품을 보며 순간 “회화 작가라던데 조각 설치 작업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큰 캔버스에 몇 개의 돌이 붙어있었다. 고정 장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저렇게 깔끔하게 돌을 붙였다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한 순간, 돌은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만큼 돌의 표면과 질감 부피감을 완벽하게 그렸다는 말이다.

“갤러리 방문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우연히 지나가던 분들이 돌을 왜 이렇게 붙였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실감 나게 그렸다는 뜻이겠죠. 다들 감탄하시더라고요.”

이영인 작가의 첫 개인전을 유치한 하스 갤러리 김현주 대표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비밀이 있다. 실제 돌을 붙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돌을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찬찬히 쳐다보면, 돌의 그림자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그림자에 살짝 다른 컬러가 들어가기도 하고 실제 그림자와 방향이나 크기가 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결국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를 표현한 영역이다. 극사실주의적인 묘사에 추상 회화가 더해진 것이다.


이영인 ‘existence’ 연작 시리즈. 갤러리 하스 제공 이영인 ‘existence’ 연작 시리즈. 갤러리 하스 제공

이영인 ‘existence’ 연작 시리즈. 갤러리 하스 제공 이영인 ‘existence’ 연작 시리즈. 갤러리 하스 제공

이영인 ‘existence’ 연작 시리즈. 갤러리 하스 제공 이영인 ‘existence’ 연작 시리즈. 갤러리 하스 제공

작가의 그림은 굉장히 단순하다. 대부분 돌멩이 하나가 그려져있다. 100호 정도의 큰 캔버스에도 6~7개 정도의 돌멩이가 그려져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을 왜 그릴까. 이 작가는 “단순한 사물이 가장 미학적인 형태로 보일 때 가지는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돌은 인간만큼이나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가졌고 돌 하나 하나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빛의 존재를 섬세하게 암시한다. 주변의 여백을 강조하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고요하게 명상에 빠지는 것 같다.

작가는 “자연이 수백만 년 동안 쌓아 올린 돌의 견고함과 연속성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비와 바람, 물과 흙에 의해 자연스럽게 변화해 온 돌은 대자연의 역사를 담고 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캔버스 중앙에 그려진 돌멩이 주변의 큰 여백들은 상상의 여지를 주는 것 같다. 이 작가의 그림은 확실히 기존 한국 화단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미술판에선 이 작가의 한국 첫 전시가 서울이 아니라 부산의 갤러리가 유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영인 작가의 ‘신비의 돌’ 전시는 25일까지 열린다. ​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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