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으로 조각하는’ 보스코 소디, 부산서 신작 전시
24일까지 조현화랑서 전시
멕시코 출신 세계적인 작가
독특한 질감의 회화 유명해
작가라는 길을 선택한 순간 창작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 방식(기법)을 가진 작가에게 ‘신의 은총이 내렸다’고 표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듯싶다. 이런 점에서 멕시코 출신 작가 보스코 소디는 큰 은총과 축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관용적인 표현을 찾으면, ‘몇 대에 걸쳐 조상의 은덕이 쌓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보스코 소디는 그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화가보다 ‘물감의 조각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의 작품도 부조 회화라는 단어로 지칭된다. 두 개의 단어로 유추해 보면, ‘작가는 회화와 조각의 두 방식을 모두 사용하는가 보다’라는 짐작이 갈 것이다.
소디는 안료, 톱밥, 아교, 물을 걸쭉하게 섞어 이를 한 움큼씩 손으로 떠서 캔버스 위에 던진다. 이 방식으로 캔버스 위에 여러 겹의 퇴적물이 쌓이면 작업이 굳도록 내버려둔다. 몇 달의 시간이 지나면, 작품 표면은 예측하지 못한 단층이 나온다. 마른 계곡과 넓은 벌판, 화산이 분출된 것 같은 지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를 두고 부조 회화 혹은 물감으로 만든 조각이라고 불리게 됐다. 소디는 작품의 마무리가 작가가 아니라 자연이 결정한 균열이라는 점에서 이를 ‘하느님의 키스’라고 표현한다. 작품에 드러난 우연성을 과감히 즐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보라색으로 배경을 처리한 건 이번 신작전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이다.
조현화랑 달맞이점은 24일까지 보스코 소디의 신작전 ‘여명(Dawns)’을 연다. 2019년, 2022년에 이어 조현화랑에서 어느새 세 번째 개인전을 여는 보스코 소디는 그동안 세계적인 아트페어, 유명 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이젠 미국 뉴욕에 작업실을 두고 있으며 전 세계 미술관, 대형 갤러리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작품 활동 외에도 그동안 모은 기금으로 민간 예술재단 카사와비를 설립했고, 멕시코 오악사카와 일본 도쿄에 레지던시를 마련해 작가들의 국제 교류와 작가 지원까지 돕고 있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멕시코 오악사카 지방의 카사와비 재단 건물은 유명하다. 남태평양을 마주하는 숲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니엘 뷔렌, 우고 론디노네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전시도 열리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보스코 소디의 신작이 부산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다는 사실은 부산 미술계에게는 큰 의미이다. 바다와 숲을 품은 조현 화랑 달맞이점은 소디 신작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번 전시에선 기존 부조 회화에서 좀 더 다양해진 색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4m가 넘는 대작 삼베(커피 자루) 시리즈, 멕시코 화산암으로 제작한 조각 등은 눈길을 끈다.
전시장 1층은 열 개의 도금된 화산암 조각과 삼베 자루 위에 강렬한 색상의 원을 그린 작품들이 설치됐다. “오래된 자루는 이미 그 자체로 우주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소디는 자루 작업을 통해 씨앗 속에 담긴 해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커피 자루를 재료로 선택한 것은 철학가인 어머니로부터 배운 일본의 미학 와비사비의 영향이라고 한다. 와비사비는 불완전함과 자연스러운 과정의 아름다움을 포용하는 이론이다. 소디는 “고된 노동이 가미된 방식으로 재료와 교감하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설명한다.
전시장 2층에는 소디의 대표 시리즈인 부조 회화의 최신작들이 기다린다. 여명이라는 전시 제목에 맞게 해가 뜨기 전 나타나는 연보랏빛을 배경으로 작업했다. 연보라 바탕 위 쌓인 입체적인 덩어리는 소디만의 특별한 작업 방식으로 탄생했다. 1층과 2층 전시장에서 만나는 낡은 자루 회화, 반짝이는 화산석, 연보라빛 부조 회화에는 원초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시간과 자연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부산 전시가 끝난 후 이 전시는 조현화랑 서울점으로 이동해 서울 관객도 만날 예정이다. 보스코 소디 작가는 곧 한국을 방문해 부산 전시 마지막 날과 서울 전시 첫날에 관객을 직접 만날 계획이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