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문화유산 대신 인간 유홍준을 답사하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雜)스럽다’는 말의 어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잡스러움’은 좋아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大家)의 위치에 오른 분들도 존경스럽지만, 밥벌이와는 관계 없는 잡(雜)식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더욱 경외한다. 전자가 ‘전문인’이라면 후자는 ‘교양인’에 가깝다. 흔히 교양을 ‘예절’ 등으로 이해하는데(이를테면 “저런, 교양 없는 사람을 보았나” 같은 용법이다) 사실 교양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갖추어야할 일반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대학의 전공 아닌 교양과목 의미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밥벌이와 관련한 것들을 익히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세상에, 밥벌이에 연연하지 않는 지식욕과 호기심이 매력적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이 ‘잡(雜)문’을 모은 책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냈다. 저자 스스로 ‘잡문’이라고 말하는 이 글들은 매 주제마다 인문학에 대한 깊고 넓은 잡식과 저자 특유의 촌철살인하는 메시지가 잘 드러난다. 가장 앞서 나오는 글 ‘고별연’부터 잡스러움이 범상치 않다. 금연을 결심하며 쓴 글로, 담배와의 고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담배와 관련한 자타(自他)의 여러 일화와 담배를 소재로 한 옛 선인의 글들을 버무려 ‘썰’을 푸는데, “(담배도 못 끊는) 내가 왜 남의 금연 맹서나 읽고 있나” 싶다가도 어느새 그의 글 의도(?)에 전염돼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외 50년 지기 홍세화·김민기 등을 떠나보내며 쓴 추도사에서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세월을 뛰어넘은 우정이, 자신의 주례 선생인 리영희 선생에 대한 회고에서는 질곡 많은 현대사 속에서도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지식인들의 교류가 감명 깊게 펼쳐진다. 저자의 인생만사를 함께 답사하는 동안 내 인생에 대한 지혜도 조금은 챙길 수 있을 듯 하다. 유홍준 지음/창비/364쪽/2만 2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