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거꾸로 간다] 함께 나이 들기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달 부산에서 세계 94개국 1400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제27차 세계자원봉사대회가 개최됐다. 전쟁 상흔 속에 세계 주요국의 원조로 회복의 계기를 마련했고 근대적 복지를 시작했던 부산이 이제는 세계의 자원봉사 전문가를 초청하는 행사를 열게 된 것이다. 자원봉사는 고령화 등 복합적 위기를 경험하는 이 시대에 좋은 사회로 성장하는 실천 전략이 될 수 있어서 더 반갑다.
현대는 고립이 강요되는 시대로 실천 노력이 없으면 관계의 빈곤과 결핍이 일상화된다. 작년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35.5%로, 유럽 국가들에 비해 비자발적 독신 경향이 매우 높다.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녀의 연락, 방문 정도가 감소되고 있어 기능 쇠퇴와 외로움 등으로 관계가 필요할수록 오히려 더 빈곤해지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뷰트너 등이 연구한 세계 주요 장수 지역인 ‘블루존’은 신체활동, 식사 외에도 풍부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미국 은퇴자협회가 블루존으로 선정한 미네소타주 앨버트 리아시 등의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나이 들어 은퇴자 시설로 옮겨 가지 않고 자신의 집에 머물며 동네 안에서 지역주민이 서로 협력해 노인의 생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보스턴 비컨 힐 빌리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곳에서 2001년 비영리단체가 설립돼 저렴한 가격으로 노인들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고, 교통 지원과 다양한 심부름을 수행하며 독서, 교육, 상호관계 증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후 이 모델은 무려 세계 300개 동네로 확산됐다. 동네의 사회적 관계력을 키우는 일은 사회복지 대상자를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보호로 전환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전제 요건이 된다.
UN 지속가능해법 네트워크에서 매년 발표하는 행복지수의 주요 영향 요인은 사회적 지지, 선택의 자유, 반부패적 인식, 관용으로 소득과 건강보다 훨씬 크게 작용한다. 2024년 행복 순위 52위로 OECD 최하위 수준이자 자살률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할지 시사하는 대목이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 그중에서도 부산은 좋은 고령화 대처가 정책에서 가장 우선돼야 한다.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에 지쳐 더 외로운 이 시대에 ‘노노케어’ 같은 노인 세대 간 협력 증진뿐 아니라 전 세대의 협력, 동네 내 사회관계력, 도시의 사회자본이 활성화될 때 삶의 질은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함께 나이 들기’가 중요한 것이다. 번영하는 선진복지국가들은 국가의 역량과 더불어 사회 참여력이 균형 있게 작동하는 ‘좁지만 매우 중요한 회랑’에 들어가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이 저서 〈좁은 회랑〉에서 밝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