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세사기에 검찰 구형량보다 센 철퇴 내린 대법 판결
서민층 약탈하는 사기 범죄 경종 울려
보증금 회수·주거 불안 해소 대책 절실
대법원이 부산에서 180억 원대 전세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 모 씨에게 징역 15년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최 씨는 임차인들에게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2020∼2022년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부산 수영구 오피스텔을 포함해 9개 건물에서 임대사업을 하면서 229명에게 전세보증금 180억 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2022년 이후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대규모 전세사기범에 관한 대법원의 첫 유죄 확정판결이고, 경합범 가중까지 활용해 검찰이 구형한 징역 13년보다 더 센 법정최고형 철퇴를 내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형이 너무 무겁고 부당하다”면서 1심 판결에 불복한 최 씨에 대해 “주된 책임은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서민의 생명과 주거 등 삶 자체를 위협하는 악랄한 사기 범죄에 대한 경각심 차원에서도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타인의 재산을 가로채고, 목숨까지 앗아가고도 반성하지 않는 범죄를 국가가 방치하면 법치 사회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확정판결은 다른 전세사기 재판에도 주요 판례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민들의 전 재산을 강탈한 중대 범죄라는 점에서 향후 양형을 대폭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 신혼부부와 사회 초년생 등 청년층이다. 정부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 사례에서도 20~30대가 70%를 웃돌았다고 한다. 한푼 두푼 어렵게 모은 돈을 일순간에 날린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피해자도 꽤 있다. 한창 미래를 꿈꿀 이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이나 능력조차 없으면서 사기 행각을 벌였으니,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다. 안타까운 점은 대법원 판결로 최고형이 확정됐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세사기를 당한 세입자들은 전 재산을 날리거나,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정부는 대법원의 최고형 확정판결과 함께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실시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정부의 지원책은 쏟아졌지만, 삶이 나아진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전세사기는 잘못된 주택공급 정책, 허술한 등기제 탓에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다.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는 피해자들이 조속히 보증금을 회수하고, 주거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피해자 주거 안정 지원과 재산 보호는 정부의 당연한 책임이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벼랑에 몰린 피해자들이 따뜻한 집에서 편하게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도록 다양한 구제 정책이 하루빨리 실행되기를 촉구한다. 전세사기로 눈물을 흘리는 청춘은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