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시로 쓴 그림은…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갤러리 SAP, 30일까지 전시
철학 박사 출신 신용호 작가
몇 년 전 문득 그림 시작해
“줄곧 해 온 글쓰기와 비슷”

갤러리 SAP 신용호 개인전 전시 전경. 김효정 기자 갤러리 SAP 신용호 개인전 전시 전경. 김효정 기자

갤러리 SAP 신용호 개인전 전시 전경. 김효정 기자 갤러리 SAP 신용호 개인전 전시 전경. 김효정 기자

“나는 ‘이렇게’… ‘마음의 빛’을 찾고 있다”= ‘그리다(畵)’ - ‘시(詩)를 쓰다’

‘희망(希望)’은 ‘빛을 찾는 마음’이다. - ‘우리의 삶의 깊은 초상(肖像)’이다.

신용호 작가가 직접 쓴 개인전 소개글의 첫 부분이다. 신 작가는 A4지 6장에 빼곡하게 이 같은 형식으로 전시를 소개했다. 갤러리 대표 혹은 큐레이터가 작가 혹은 작품에 대해 요약해서 설명하거나 평론가의 글로 구성되는 기존 전시 소개 자료와 완전히 다르다. 시 같기도 하고 종교적 화두를 담은 것 같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부산 중구 남포동 갤러리 SAP에서 진행 중인 신용호 개인전 ‘끊어진 다리-20세기 현대미술에 대한 유감’을 보러 갔다.

갤러리 SAP은 갤러리 604를 운영했던 전창래 대표가 지난해 8월 다시 연 갤러리이다. 부산 미술판에서 세계 거장들 특히 유럽과 일본 쪽과 가장 많은 네트워크를 가진 전 대표의 새로운 갤러리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영도 바다를 배경으로 새 빌딩 펜트하우스(꼭대기층)에 자리잡은 이 갤러리는 위치와 풍광에서도 부산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개관전 이후 한참을 고민하며 쉽게 전시를 열지 않던 갤러리 SAP이 선택한 작가라는 점에서 신용호 작가는 미술판에서 화제가 됐다. 우선 “신용호 작가가 누구냐"라는 질문이 먼저 떠돌았다. 주요 갤러리 대표들과 큐레이터,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신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듣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 작가는 사실 전업 화가가 아니다. 1956년생인 작가는 고려대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로 유학가 파리 4대학에서 니체와 바타유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시절부터 철학, 특히 동양철학과 종교, 문학, 예술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고 철학, 예술에 대한 글쓰기를 꾸준히 했다.

신용호 ‘초록의 시’. 김효정 기자 신용호 ‘초록의 시’. 김효정 기자

신용호 ‘아름다운 비밀의 숲’. 김효정 기자 신용호 ‘아름다운 비밀의 숲’. 김효정 기자

신용호 ‘벗의 사람’. 김효정 기자 신용호 ‘벗의 사람’. 김효정 기자

몇 년전 고향인 전남 고흥으로 귀농한 후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배우고 익힌 철학과 미학, 예술에 대한 태도가 어느 순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림을 공부한 적도 없었지만, 그에게 그림은 글쓰기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 태도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였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소개를 시처럼 쓴 건 그 시와 그림이 자신을 표현하는 같은 매체로 느껴질 뿐이다.

전시 제목인 ‘끊어진 다리-20세기 현대미술에 대한 유감’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주요한 흐름인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입체파, 개념미술, 추상미술, 액션페인팅, 미니멀리즘 등이 우리의 ‘삶의 초상’과는 전혀 무관한 ‘지적 허영’의 형식적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미술을 전혀 전공하지 않은 이가 현대미술의 주요 사조에 대해 대담하게 도전하는 상황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작품은 현재 작가가 살고 있는 전남 고흥의 논과 밭으로 보이기도 하고 푸른 들판으로 보이기도 한다. 각 그림 옆에는 그림을 설명하는 시가 모두 붙어있다. 시에서 그림이 나오고 그림에서 이 시가 흘러나오고 있는 셈이다. 30일까지 전시가 열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