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 이기대에 퐁피두 분관을 유치해선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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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우·퐁피두미술관 분관유치 반대 부산시민·사회·문화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제34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심사위원회의. 남송우 심사위원. 정종회 기자 jjh@ 2017.10.12 부산일보DB '제34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심사위원회의. 남송우 심사위원. 정종회 기자 jjh@ 2017.10.12 부산일보DB

부산시는 1000억 원대가 넘는 시민 혈세가 필요한 퐁피두 분관유치를 왜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없이 그동안 추진해온 것인가? 이를 몇 가지 차원에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우선은 이 엄청난 예산이 투자되는 경우에는 부산시의 예산으로 집행하는 정책이라도 행안부 투자심사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부산시는 정식으로 행안부 투자심사를 받지 않고 투자심사 면제신청을 해서 행정적 절차를 거쳤다. 법적으로 투자면제신청 조항은 천재지변일 경우와 관계 장관 회의에서 논의되었을 경우이다. 퐁피두 분관유치는 2030 엑스포 유치 때 관계 장관 회의에 보고된 사항이기에 면제신청을 했다는 것이 부산시의 입장이다. 그러나 엑스포 유치는 물거품이 되었고, 당시 미술관건립장소는 북항이었다. 그러므로 분관유치 계획은 새롭게 기획되고 논의되어야 했다. 그런데 부산시는 북항에서 이기대로 유치 장소를 바꾸면서도 정식으로 행안부 투자심사를 받지 않았다. 부산시는 어떤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급하게 심사면제를 받아내었다. 급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끝까지 보존해야 할 이기대에 퐁피두 분관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일몰제로 인해 이기대 일대 사유지를 부산시가 자연공원 보존 명목으로 주민들과 협의해서 공시지가로 매입했다. 그런데 부산시는 곧장 입장을 바꾸었다. 보존하겠다던 그곳을 이제는 예술공원이란 명분을 내세워 퐁피두분관, 숲속갤러리, 아트센터, 파빌리온 등을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계획에 대해 용호동 주민들과 한 번의 공론화도 가진 바가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작업도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 중이다. 희귀조류와 식물이 산재한 지질 자연공원으로 고시된 이기대를 이런 식으로 훼손하는 것은 천혜의 부산 해안 경관을 훼손하는 일이며, 미래 세대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동안 부산시가 퐁피두 분관유치와 관련해서 시민들의 입과 귀를 막고 일방적으로 처리해온 문제들을 낱낱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그럼 왜 비밀리에 이 유치사업을 진행해 왔을까? 그 이유는 한 마디로 퐁피두와 부산시 간의 양해각서가 비밀문서로 협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건은 대외비라서 일반 시민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퐁피두미술관 분관유치 반대 대책위원회’는 이 문건을 어렵게 입수하였다. 지난 10월 14일 부산시 국감에서 퐁피두와 부산시 간의 양해각서가 이소영 의원에 의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경악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협약문건을 보면, 제2조 ‘사업설명’에서 “퐁피두센터 부산을 퐁피두 측이 5년 동안 점유한다”고 되어 있다. 점유권은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부여하는 법적 지위이다. 퐁피두 측은 자신들이 수립한 세부 계획에 의거하여 부산시에 모든 비용과 책임은 지게 하되 점유권은 자신들이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5조 ‘재무조건’에는 상설전, 기획전, 교육비와 로얄티를 합친 연간 120억 원과 여기에 세금, 운반비, 보험료 등의 모든 비용을 부산시가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퐁피두는 부산 분관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제6조의 ‘기밀유지’ 협약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제3자 또는 대중들에게는 그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제9조 ‘언어와 준거법’이다. 부산시와 퐁피두 양측은 이 기밀문서를 프랑스어와 영어로만 작성하기로 하고, ‘본 양해각서는 프랑스법에 따른다’고 협약했다.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협약이기에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국제협약서에 자국의 언어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국의 문화주권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협약에서 한국법이 아닌 프랑스법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입장을 제대로 주장할 수 있는 근거 자체를 없애는 행위이다. 우리가 우리의 주권을 포기하고 남의 나라에 속국이 되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굴욕적인 협약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것이 지자체의 수장이 독단적으로 맺을 수 있는 협약인가? 다시 한번 그 비정상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깨어 있는 시민들이 경종을 울려 분관유치를 중단시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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