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상상의 조화, 새로운 제주 곶자왈
제주 토박이 김산 작가
29일까지 부산 첫 전시
심상 담은 사회적 풍경
초현실적 자연 매력 넘쳐
대한민국 땅이지만, 제주는 확연히 다른 구석이 많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와 하늘, 외국어 같은 사투리, 신비한 설화, 집단 학살의 비극이 있는 4·3까지 ‘특별시’라는 호칭처럼 참 특별하다. 제주 토박이 김산 작가는 줄곧 제주에서만 살았다. 제주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석사까지 끝낸 후 전업 작가로 제주를 그리고 있다.
제주와 서울에서만 여러 개인전을 연 김 작가는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 로터스 갤러리에서 부산 첫 개인전 ‘Dear My Deer’를 열고 있다. 로터스 갤러리 권효선 대표가 우연히 김 작가 그림을 보고 그날 바로 제주 작업실을 찾아가 전시 협의를 할 정도로 반했다고 한다.
사실 제주 풍경을 그리는 작가는 많다. 정기적으로 스케치 여행을 가는 작가도 있고, 레지던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아예 제주에 집을 구해 정착한 작가도 여럿 있다. 하지만 김 작가의 제주 그림은 다른 작가는 흉내 낼 수없는 고유한 매력이 있다. 비평가들은 “김산 작가의 제주 풍경은 단순히 보이는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제주 역사와 문화, 삶이 녹아있는 ‘사회적 풍경’이다”라고 그 매력을 설명한다.
작가는 “예술은 한 사회를 연구하고 관찰하며 표현하는 삶의 연속적 행위이다. 제주는 본토와 다른 특수한 삶의 공동체와 사회문화, 고난의 역사가 있다. 제주 사람들의 생활과 그 주변에는 갖가지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원시 자연과 지역 모습이 그것이다”라고 말한다.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고난, 삶을 담은 장소를 그린다는 뜻이다.
김 작가의 풍경화는 대부분 원시 자연이 떠오르는 곶자왈이다. 도청의 특별 허가를 받아 관광객은 들어가지 못하는 곶자왈의 깊은 속살까지 보여준다. 사실 작가의 그림 속 곶자왈은 작가의 기억, 상상이 가미된 풍경이다. 앞서 평론가들이 언급했던 ‘사회적 풍경’이며, 작가의 심상과 관점이 들어간 재현 풍경이기도 하다.
아크릴과 유화 물감을 섞어 쓰지만, 작가는 단색화라고 불릴 정도로 거의 초록색 한 가지만 사용해 풍경을 완성한다. 수묵화처럼 담담한 초록의 세계에 다른 색을 가진 대상이 하나 있다. 흰색의 사슴이다. 제주 설화에 사슴이 1000년을 살면 푸른 빛을 띠고, 거기서 100년을 더 살면 흰빛이 된다는 내용이 있다. 흰색 사슴은 작가 자신을 대변하기도 하고, 대자연에 속한 인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중한 존재가 무사하길 바라는 염원, 자신들의 터전인 제주, 더 나아가 자연을 수호하고자 하는 마음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신작으로만 채운 이번 전시에선 이전 작품보다 과감해진 면모를 볼 수 있다. 물감을 흩뿌리거나 반짝이는 젤을 발라 입체감을 더했고, 초현실적인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발 열기 속에 빠르게 사라지는 아름다운 제주를 지키려는 작가의 호소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29일까지 열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