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딘가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을 찾아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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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환 작가 ‘흔적, 반향’ 전
갤러리 휴에서 27일까지
기억과 관계의 의미 담아
구체의 형태 표현 인상적

박영환 ‘지나온 세계에 서서’. 갤러리 휴 제공 박영환 ‘지나온 세계에 서서’. 갤러리 휴 제공

갤러리 휴에서 열리고 있는 박영환 작가의 전시 전경. 갤러리 휴 제공 갤러리 휴에서 열리고 있는 박영환 작가의 전시 전경. 갤러리 휴 제공

지난해 2월 부산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박영환 작가는 미술계에서 또래 작가군 중 가장 선두 주자에 속한다. 부산 맥화랑 미술상으로 선정돼 지난해 5월 상업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전시 작품 대부분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열린 대형 아트페어와 국제적인 페어에서도 20대 중반, 신인 작가임에도 박 작가의 그림 앞에 많은 사람이 몰렸고, 판매 역시 성공적이었다. 미술 시장에서 판매로선 인기가 적은 수묵화로 신인 작가가 이런 성과를 냈다는 건 엄청나게 놀라운 사실이다.

박 작가의 작품은 기존 수묵화와 확연히 다른 매력이 있다. 통창의 현대적인 건물, 직선의 계단 아래, 혹은 창밖에는 둥근 구체들이 있다. 숲이 펼쳐지고 눈이 내리기도 하고 눈이 가득 쌓인 언덕에 구체를 밀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 구체는 검은색부터 명도가 점점 옅어져 회색, 흰색을 띠기도 한다. 종이를 뜯어내 눈을 표현했고 작은 인물들은 따로 그림을 오려서 붙였다. 작지만 입체적인 느낌이 나는 것도 이런 기법 때문이다. 흔들리는 나무의 질감은 회화가 아니라 영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구체는 기억 덩어리 같은 존재입니다. 선명한 검은색은 생생한 현재의 기억을, 연해지는 색은 희미해지고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창은 풍경으로서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현재와 과거를 잇는 경계이며, 안과 밖을 나누는 틀이자 개인과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인 셈이죠. 창 너머 흐려지는 풍경을 바라보면,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남겨진 존재를 떠올리게 합니다.”

박영환 ‘길었던 순간에 서서’. 갤러리 휴 제공 박영환 ‘길었던 순간에 서서’. 갤러리 휴 제공

박영환 ‘반향’. 갤러리 휴 제공 박영환 ‘반향’. 갤러리 휴 제공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억이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기존 수묵화에선 금기시했던 도형적인 표현이 작가의 손을 거쳐 독특한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사실 먹이라고 표현했지만, 작가의 작품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검은색과 다르다. 보라색, 청색, 녹색이 도는 먹은 재료에 대한 치열한 연구 끝에 나왔다. 휴학을 한 후 먹과 종이를 연구하기 위해 대한민국 전역을 비롯해 일본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그 같은 노력 덕분에 “20대 신인 작가인데 대가의 필치가 엿보인다” “‘힙’하고 ‘트렌디’한 수묵화의 탄생”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부산 남구 분포로 갤러리 휴에서 진행 중인 ‘흔적, 반향’ 전은 지난해 전시보다 더 정돈되고 차분해진 느낌이다. 작가는 “기법이나 형태가 이젠 완전히 내 것이 된 것 같다. 전체 색깔을 청 먹에 맞추었고, 한지를 뜯어 눈 내리는 풍경이 많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개인전과 아트페어의 성공과 별도로 작가 개인에게는 아프고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밤처럼 어두운 풍경, 낭떠러지에 선 인간 등의 표현은 아마도 이 시기에 나온 것 같다. 작가는 그림이 있어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고, 작가이기에 아픔 역시 고스란히 작품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1.5m, 2m의 대형 작품부터 10cm의 작은 작품들은 각각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박영환 ‘함께 나아가는 것’. 갤러리 휴 제공 박영환 ‘함께 나아가는 것’. 갤러리 휴 제공


박영환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갤러리 휴 제공 박영환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갤러리 휴 제공
전시 개막날 보여준 박영환 작가의 퍼포먼스 공연. 갤러리 휴 제공 전시 개막날 보여준 박영환 작가의 퍼포먼스 공연. 갤러리 휴 제공

전시 개막날 보여준 박영환 작가의 퍼포먼스 공연. 갤러리 휴 제공 전시 개막날 보여준 박영환 작가의 퍼포먼스 공연. 갤러리 휴 제공

박 작가는 전시에서 항상 퍼포먼스 공연을 같이 보여준다. 작가를 비롯해 춤꾼, DJ, 배우 등 다양한 작가의 친구이자 아티스트들이 작가의 그림을 입체적인 무대로 재현한다. 몇 명이 참여했던 기존 공연에서 확대해 이번 전시에선 10여 명의 사람들이 공연에 참여했다. 그만큼 예술적인 동지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5월 신작 개인전도 예정돼 있는데 기존 액자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그림을 보여주는 실험을 할 예정이다. 갤러리 휴의 ‘흔적, 반향’ 전은 27일까지 열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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