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돼지국밥 로드] 5. 부산돼지국밥의 미래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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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맛과 조리방식 살린 ‘지역 음식’을 부산 너머로!

엄용백돼지국밥의 엄수용(가운데) 사장과 부산 젊은 셰프 모임 동료들. 엄용백돼지국밥 제공 엄용백돼지국밥의 엄수용(가운데) 사장과 부산 젊은 셰프 모임 동료들. 엄용백돼지국밥 제공

부산돼지국밥은 지역 음식인 동시에 자영업이자 외식 전문점의 세부 업종이다. 이 세 가지 영역을 함께 보아야 부산돼지국밥의 미래도 이야기할 수 있다.

맛 관리·연료비 절감 등 위한

체계적 교육·맞춤 설비 우선

음식 넘어선 종합적 경험 시도

전통적인 토렴 보존 필요성 제기

의미있는 ‘볼거리’ 부각 제안도

레시피 체계화·접근성 제고도

■ 지속 가능한 자영업으로

부산의 ‘돼지국밥’ 상호 식당은 올 9월 기준 692곳으로 4년 전(572곳)보다 20%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음식숙박업 신생기업의 5년 생존율(18.9%)을 고려하면 새로 생긴 10곳 중 8곳은 5년도 못 버티고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부산시는 2015년 돼지국밥 식당 60곳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식품 안전 컨설팅 사업’을 진행했다. 여기에서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컨설팅에 참가한 경주박가국밥 박주호 씨, 합천일류돼지국밥 박지영 씨 등은 육수를 내고 재료를 보관하는 방법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김사업 BS외식경영연구소장은 솥이나 화구 등 주방 설비와 동선의 비효율성을 주로 지적했다. 모두 맛 관리는 물론 재료비, 연료비, 인건비 상승과 직결되는 문제들이다.

엄용백돼지국밥 엄수용(37) 씨는 2018년 개업에 앞서 최적의 재료와 조리법을 찾아 주방을 효율화하는 것이 먼저라고 봤다. 그는 부산 젊은 셰프 모임 동료들과 머리를 맞댔다. 압력밥솥과 육절기를 이용하고, 국밥 고기 부위를 세분화하고, 별도 솥과 채반으로 토렴을 하는 방식이 이렇게 나왔다.

부평깡통시장 양산집의 노치권(32) 씨는 2017년에 오후 3~5시 브레이크타임을 신설하고 올 7월 월 2회 휴무도 도입했다. 노 씨는 “당장 매출보다도 직원 손님 모두 즐겁게 롱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부산돼지국밥 로드(porksoup.busan.com) 30곳 식당은 하루 평균 13.7시간을 영업하고 휴무일은 4주 기준 1.4일에 불과하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외식업으로

“부산돼지국밥은 여러 지역 음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만큼 다양하게 변주되고 분화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 방향으로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는 것이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최원준 시인(동의대 평생교육원 교수)은 이렇게 말한다.

프랜차이즈는 변화의 한 형태다. ㈜행운식품은 2005년 목촌돼지국밥 체인 사업을 시작해 부산 경남에 80개 매장을 냈다. 육가공 유통망과 표준화된 육수 원액 제공으로 맛과 조리 과정을 시스템화했다. ㈜더도이종가집도 2010년부터 12개까지 매장을 늘렸다.

음식을 넘어 종합적인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양산국밥은 2대 김성운(31) 씨가 합류하며 뉴욕의 레스토랑을 벤치마킹한 인테리어로 매장을 싹 바꿨다. 뚝배기 대신 놋그릇을 도입했고 위스키 잔술도 판다.

합천국밥집 천병철 사장의 토렴 작업. 최혜규 기자 합천국밥집 천병철 사장의 토렴 작업. 최혜규 기자

토렴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고기 토렴을 고수하는 합천국밥집 천병철(61) 씨는 “고된 수작업이지만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식인 만큼 토렴이 대부분 없어진 미래에는 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학원까지 나온 아들에게도 물려받아서 해 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을 맛보다〉의 저자인 박종호 〈부산일보〉 논설위원은 토렴을 콘텐츠화하는 아이디어도 제시한다. 일본 후쿠오카의 라멘집 ‘멘게키조’는 극장식 주방에서 제면 과정을 보여 주는데, 토렴 또한 위생 우려가 해결된다면 희귀하면서 의미있는 볼거리로 부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확장 가능한 지역 음식으로

부산돼지국밥은 이미 부산을 넘어 새로운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2014년 부산관광실태조사에서 돼지국밥은 내국인(31.5%)과 외국인(33.1%) 관광객 모두에게 먹어본 음식 중 추천 1순위로 꼽혔다. 쌍둥이돼지국밥에는 올 2월부터 동남아에서 주 2회 단체 관광객이 온다.

부산돼지국밥이 직면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식문화의 변화다. 밥+국+반찬의 전통적인 한식 상차림 선호는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있다. 배달 중심의 외식업 재편, 좋은 재료에 대한 관심과 동물복지를 비롯한 윤리적인 소비 트렌드도 영세한 식당들에게는 버거운 과제다.

기장군에서 27년째 영업 중인 조방국밥은 신규 10~20대 고객을 잡기 위해 올 9월 대행앱 배달을 시작했다. 2대 경영자 양홍전(33) 씨는 “젊은 층이 일단 돼지국밥의 매력을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광화문국밥의 돼지국밥. 최혜규 기자 광화문국밥의 돼지국밥. 최혜규 기자

재료의 고급화는 상당히 진행됐다. 부경양돈농협 관계자는 “삼겹살이나 항정살 국밥을 내고 냉장육, 더 나아가 브랜드육을 찾는 돼지국밥 식당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광화문국밥과 옥동식이 국내에서 일반적인 삼원교잡종 돼지 대신 두록이나 버크셔 품종을 쓰는 이른바 ‘서울식 돼지국밥’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두 식당은 모두 미식 평가 책자로 정평난 〈미슐랭 가이드〉 서울편 빕구르망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태경 식육마케터는 “돼지고기 소비 패턴이 축제식 삼겹살 구이에서 식사용 음식으로 옮겨가고 있고, 젊은 층은 돼지국밥에 대한 편견도 없다”며 “돼지국밥 레시피를 체계화하고 매장 접근성을 높인다면 일본의 대형 규동 프랜차이즈 요시노야처럼 시장성이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끝-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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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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