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한 조치→참사’ 인과성 확인 땐 수뇌부도 처벌 못 피할 듯
점점 거세지는 ‘경찰 책임론’
경찰청 ‘늑장 보고’ 배경 등 살펴
업무상 과실치사상 적용 거론돼
지자체 등엔 배상 책임 물을 수도
대응 미흡, 형사처벌 좌우할 쟁점
전문가 “경찰 면책은 어려울 듯”
‘이태원 참사’ 전 경찰이 위험을 인지하고도 적극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경찰 책임론이 거세진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서울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은 물론 서울경찰청까지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수사 범위와 처벌 수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2일 이태원 참사 관련해 용산경찰서와 서울경찰청 등에 대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특수본은 초동 대응 미흡 의혹과 서울경찰청이 이태원 참사 상황 등을 경찰청에 ‘늑장 보고’한 배경 등을 살피고 있다.
경찰 책임론에 무게가 실리면서 경찰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혐의도 거론된다.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으면 위해 방지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5조에 따라 경찰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참사 4시간 전부터 직전까지 용산서와 이태원파출소는 참사 가능성을 경고하는 11차례의 신고를 받았으나 현장 출동은 단 4건에 그쳤다. 기존 판례를 보면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은 법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된 바 있다.
법조계에선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소홀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 간부들이 대거 기소됐던 사례를 들어 이번 사태에서 경찰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거론한다. 2019년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목포해양경찰서 상황담당관 등 모두 11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위험을 예견하는 신고가 11차례나 있었고 CCTV 등으로 인근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세월호 사건보다 대응 소홀 정황이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에 배상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있다.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당시 위험이 예견된 상황에서 행정기관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서초구청과 경찰의 책임을 인정해 산사태 피해자에게 4억 7767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경찰과 지자체가 10만여 명의 시민이 모인다고 예상했음에도 적절한 대응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이 명확해진다면 손해배상 인정 가능성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미흡한 조치가 참사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또 그러한 조치가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가 경찰의 형사처벌을 좌우할 쟁점이라고 지적한다.
건국대 한상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경찰 처벌 가능성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112신고가 접수된 가장 긴박한 시점에서 경찰의 초동 대응이 미흡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어 경찰 책임이 확인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한 변호사는 “안전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을 언제, 어떻게 인식했느냐와 사전에 인파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예측했는지가 핵심”이라며 “112신고를 인지하고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거나 사전에 사람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형사처벌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