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화약고’ 된 수도권 과밀… 국토균형발전 되짚는 계기로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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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인구 집중 재난에 취약
이태원 참사도 과밀화로 파생
서울 과밀 현상, 일상적 발생
지하철 전동차 1량에 300명 타
“인과 관계 직접적 설정은 경계
국토 균형 차원 문제 인식 필요”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모습. 연합뉴스

300여 명이 숨지거나 다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으로 집중된 ‘수도권 과밀화’를 되짚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초과밀화된 도시는 각종 안전사고는 물론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등 여러 재난 상황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에 국토균형발전에 관한 논의가 보다 무게감 있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인구밀도는 ㎢당 1만 5699명으로 국토 전체 인구밀도인 515명에 비해 30.4배 많다. 부산의 인구밀도는 ㎢당 4320명으로 서울 다음으로 높지만, 서울의 27% 수준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서울의 인구밀도는 선진국 주요 도시들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에 속하고, 개발도상국 주요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게다가 2019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수도권 과밀화는 점차 심화되는 추세다. 도시의 과밀화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시민들은 매일 같이 과밀 문화를 접하며 위험에 노출돼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옥철’로 불리는 출퇴근길 서울의 지하철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혼잡도가 가장 높은 지하철 노선은 9호선으로 160명이 타면 가득 차는 전동차 한 량에 300명이 타고 있는 수준이었다. 전동차 출입문 밖에서 누군가 밀지 않으면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핼러윈과 같은 기념일이나 축제가 아니더라도 과밀 현상은 수도권에서 일상적으로 빚어진다. 유명 연예인의 콘서트가 열리거나 프로야구의 ‘빅매치’만 성사되더라도 인근 지하철역과 번화가가 인파로 가득 찬다. 직장인 이 모(35·서울 용산구) 씨는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 행사에 갔는데 인파가 너무 몰려 겨우 빠져나온 적이 있다”며 “이태원 참사 이후 돌이켜보니 ‘혹시 그때 나도’라는 생각이 드는 아찔한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우리나라는 인구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그 안에서도 교통이 발달해 한 공간에 운집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며 “이 같은 현상은 재난 상황으로 이어지면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만큼 거시적·미시적 고민이 동시에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안전사고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도 수도권 과밀화의 위험성은 그대로 노출됐다. 서울의 의료 인프라는 국내 다른 도시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우수하지만, 비자발적 접촉의 무한 증식과 도시의 복잡성 등으로 인해 결국 국내 전체로의 감염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적 차원의 애도와 진상 규명 등이 마무리되면 수도권 과밀화 문제 해소를 조금씩 풀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분권전국회의 박재율 대표는 “국가애도기간이라 섣불리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이번 참사는 대한민국의 수도권 초집중 현상에서 뿌리를 두고 파생된 여러 안타까운 사건 중에 하나라고 본다”며 “인구·인프라 등 각종 자원의 과밀을 분산하고 국토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실질적·정책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수도권 과밀 현상과 이번 참사 사이에 인과관계를 직접적으로 설정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구밀도가 높고 인파가 많이 몰린다고 해서 반드시 큰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소 잘 작동하던 안전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밀 현상이 비교적 덜한 다른 지자체에서도 안전 관련 규정 강화, 조례 신설·개정 등을 통해 안전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는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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