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바구니 단골 가공식품 가격, 73개 중 70개나 올랐다
통계청, 물가 지수 조사
지난해 같은 달보다 9.5% 상승
식용유 42%, 밀가루 36% 올라
“장사 20년 만에 이런 물가 처음”
원유 등 원자재 가격 급등이 요인
식품 업계, 가격 인상 재차 예고
“장사 20년에 이런 물가는 처음 봅니다.”
서면특화거리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최 모 씨는 체감상 역대 최악의 물가라며 혀를 내둘렀다. 연초부터 밀가루 가격이 오른 데 이어 최근에는 계란 가격까지 널을 뛰고 있다. 한 판 5000원 남짓하던 계란이 8000원을 넘나든다. 계란과 밀가루 모두 땅콩빵과 계란빵을 파는 최 씨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식자재다.
최 씨는 “한 달 치 식자재를 보통 한꺼번에 주문하는데 38만 원 선이면 해결되던 발주 가격이 올해는 60만 원 가까이한다”며 “코로나 끝나고 상황이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고물가에 이렇게 고생할 줄 몰랐다”고 전했다.
식용유와 밀가루 등 가공식품 전반이 올해 13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 지수는 113.18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달보다 9.5% 상승했다. 이는 2009년 5월(10.2%)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가공식품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서 식품이 오히려 석유류보다 앞서서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조사대상 73개 품목 중 70개 품목이 1년 전보다 상승했다. 식용유(42.8%), 밀가루(36.9%), 부침가루(30.8%), 국수(29.7%), 물엿(28.9%) 등의 상승률이 유독 높았다. 73개 품목 중 1년 전보다 가격이 오르지 않은 품목은 이유식(0.0%), 유산균(-2.0%), 과실주(-3.3%) 단 3개 품목뿐이었다.
서면의 한 대형마트 캐셔 장 모 씨는 “계산대에 오면 특히나 라면이나 식용유, 밀가루를 구매한 고객 입에서는 빠지지 않고 ‘물가가 너무 올랐다’는 하소연이 나온다”며 “작은 마트는 오후 7시, 대형 마트는 오후 9시면 타임세일을 하는데 그때마다 사람이 엄청나게 몰린다”고 말했다.
장 씨가 꼽은 고물가 직격 품목은 라면과 밀가루, 식용유다. 특히나 라면은 묶음 행사가 잦아 일반 가정에서는 가격 상승이 크게 체감되지는 않지만 작은 식당이나 분식점 등에서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는 게 장 씨의 이야기다.
통계청 조사에서는 한 달 전과 비교해도 73개 품목 중 54개 품목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눈에 띄게 가격 변동이 있다. 식자재가 10개 중 7개꼴로 실시간으로 물가가 뛰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특히 치즈(11.0%), 라면(8.9%), 시리얼(8.1%), 두유(8.0%), 스낵과자(8.0%) 등의 상승 폭이 가팔랐다. 모두 섭취가 간편해 식당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자주 찾는 식품들이다.
주부 서 모 씨는 “예전에는 예사롭게 생각했던 게 마트 전단 할인행사였는데 요즘은 주부들마다 식자재를 한 번에 다량으로 구입해서 쟁여 두려고 행사마다 엄청나게 몰리고 행사장에 치이곤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가공식품 전체 가격이 출렁이고 있는 건 곡물을 비롯해 팜유,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주요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으로 3월에 최고치(159.7)를 기록했다. 식용유 등 가공식품의 원료로 쓰이는 팜유 역시 올해 상반기 인도네시아의 식용유 수출 금지 조치 등으로 한 차례 출렁인 적이 있다.
판매하는 원료 재고를 소진해야 새로 수입하는 식품업계 특성상 늘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 제품 가격 사이에 1∼2분기 시차가 존재했다. 그래서 가공식품은 한번 가격이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고, 한 번 오른 가격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전체 물가 상승세에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주부 박 모 씨는 식품 가격이 오르면서 오히려 밖에서 식사하는 가족들이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전했다. 박 씨는 “아이들이 20대인데 500원, 1000원씩 오른 점심값 때문에 용돈을 더 달라고 해서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선 석유류에 비해 가공식품의 물가 기여도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전체 물가에 대한 가공식품의 기여도는 1월 0.36%포인트(P)에서 9월 0.75%P, 10월 0.83%P로 확대되는 중이다. 반면, 석유류의 기여도는 지난 1월 0.66%P에서 6월 1.74%P까지 커졌다가 9월 0.75%P, 10월 0.42%P로 내려앉았다. 지난달을 기점으로 가공식품과 석유류의 물가 기여도가 역전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식품업계는 가격 인상을 재차 예고하고 있다. 삼양식품이 이달 7일부터 ‘불닭볶음면’과 ‘삼양라면’ 등 13개 브랜드 제품 가격을 평균 9.7% 인상하고, 팔도는 이달 ‘비락식혜’와 ‘뽀로로’ 등 음료 8종의 출고가를 평균 7.3% 올린다고 밝힌 상황이다. 낙농가와 우유업계도 원유 기본가격을 리터당 49원 올리기로 하면서 유제품과 아이스크림, 치즈 등의 가격도 줄줄이 인상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에서 “먹거리를 중심으로 물가 상방 압력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가공식품 가격 인상 최소화 등 장바구니 물가 안정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며 “식품 원료에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분야별로 업계 간담회 등 협의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