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앙숙’ 유럽·남미, 월드컵 노동자 인권 놓고 장외 싸움
[2022 카타르 월드컵]
가혹한 환경 개선 FIFA 압박
유럽 10개국 축구협 성명 발표
남미축구연맹 “축구만 즐기자”
2030년 개최지 놓고 또 맞붙어
유럽과 남미 축구협회가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월드컵 우승을 양분해 온 두 대륙 축구단체가 월드컵 개최에 앞서 일찌감치 장외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잉글랜드축구협회 등 유럽 10개국 축구협회는 지난 7일(한국시간)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노동자와 관련된 두 가지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겠다고 반복적으로 약속했다. 우리는 FIFA가 이를 이행하도록 계속 압박할 것”이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성명엔 잉글랜드를 비롯해 벨기에,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웨덴, 스위스, 웨일스의 축구협회가 동참했다.
성명에서 밝힌 두 가지 사안이란 카타르 정부의 월드컵 준비 과정 중 고통받은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수도 도하에 이주 노동자 지원센터를 설립하자는 것이다. 카타르는 이번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경기장 건설 등에 투입된 외국인 노동자를 가혹한 근로 환경에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영국 매체 가디언은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한 이후 10년간 인도·파키스탄·네팔 등지에서 온 노동자 6500명 이상이 열악한 노동 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노동 인권을 탄압하는 국가가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카타르 측은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했고, 착취적 노동제도인 ‘카팔라’도 폐지했다고 밝히고 있다. 카팔라는 외국인 노동자가 고용주의 승인을 받아야만 이직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혹독한 노동환경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이 같은 개선점은 인정하지만, 월드컵 총상금과 같은 규모인 4억 4000만 달러(약 6094억 원)의 노동자 지원기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더불어 FIFA가 여전히 인권 문제에 눈을 감고 있다고 비판한다. 유럽 10개국 축구협회도 마찬가지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남미축구연맹(CONMEBOL)은 ‘월드컵을 즐기자’는 입장을 밝혀 대조를 이뤘다.
남미축구연맹은 8일(한국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축구계에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지지를 촉구한다”며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는 정치적·이념적 논란과 대립을 초월해서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논쟁은 뒤로 밀릴 때가 됐다. 전 지구가 간절히 기다리는 대회에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축구에만 집중하자’는 FIFA의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지난 4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월드컵 참가 32개 팀에 “축구는 이념적·정치적 싸움에 휘말려선 안 된다. 축구에 집중하자”는 편지를 보낸 바 있다.
이 같은 입장 차는 2030년 월드컵 유치와도 맞물려 있다. 남미축구연맹 소속인 우루과이·칠레·아르헨티나·파라과이 4개국은 2030년 월드컵 공동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2030년은 우루과이에서 열린 1회 월드컵으로부터 100년 되는 해다.
이에 맞서 유럽 측은 스페인·포르투갈·우크라이나가 공동 개최에 나서 경쟁 중이다. 이래저래 ‘월드컵 쌍벽’인 두 대륙의 월드컵 전쟁은 장외에서부터 벌써 시작되고 있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