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과의 관계 알 수 있다면, 법적책임 물을 수도
[이태원 희생자 공개 파문] 처벌 가능성은
온라인 매체 ‘일방적 공개’ 논란
살아 있는 개인만 개인정보 인정
개인정보보호법 적용은 힘들 듯
명단 유출자 ‘형사 책임’ 가능성
한동훈 장관 “문제 있을 수 있어”
한 온라인 매체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이름을 유족 동의도 없이 공개해 논란이 인다. 형사적 처벌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족의 비극을 강제로 노출시킨 행위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다.
온라인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는 ‘시민언론 더탐사’와 협업을 통해 지난 14일 웹사이트에 희생자의 이름을 게시했다. 이 매체는 “희생자들의 실존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유가족 동의를 얻지 않은 일방적인 공개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민들레 측은 “신원이 특정되지 않지만 그래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해 온 유족 측 의사에 따라 희생자 10여 명의 이름은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들을 둘러싼 논란은 법정 공방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15일 부산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논란과 관련된 법 조항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사자명예훼손 등이다. 이날 오전 이종배 서울시의회 의원이 이 매체를 경찰에 고발한 죄명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하지만 실제 처벌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개인’의 것으로 본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성명, 주민등록번호, 영상 등 직접 정보는 물론 간접 정보까지 모두 보호 대상이 된다. 그러나 ‘사망자의 이름’은 보호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해석이다.
법무법인 예주의 김소연 변호사는 “법적 책임 소재를 떠나 유족의 동의도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행위는 적절치 못하다고 보이나 사망자의 개인정보를 현행법으로 보호하기는 어렵다”며 “사자명예훼손의 경우에도 허위사실이 아닌, 사망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유족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금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실익은 적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을 살아 있는 유족에게 적용한다면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소정 법률사무소의 김소정 변호사는 “희생자 명단 공개로 인해 유족들의 개인정보가 침해돼 피해를 봤다고 하면 법적 책임을 물을 소지가 있다”며 “유족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보인 경우 유족의 개인정보로서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해석 판례가 있다”고 말했다.
희생자 명단을 유출한 사람에 대해서는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공적 정보인 사망자 명단을 관리한 공무원 등에게는 비밀누설죄 같은 다른 법조항이 적용될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그들(민들레 측)이 훔친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제공했을 가능성이 큰데, 그 과정에서 공적 자료 유출의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이날 논평을 통해 “명분이 무엇이든 사회적 애도는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며 “정부의 애도 계엄령과 맞서는 일도 중요하지만, 언론이 피해자를 호명해 일방적으로 공개한다고 진정한 추모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희생자 명단이 유족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전했다.
명단 공개와 관련해 한 유족은 “곧바로 이메일을 보내 이름을 지워 달라고 요청했지만 홈페이지에서만 내려갔을 뿐 명단이 캡처돼 퍼질 대로 퍼졌다”며 “주변에 알린다고 해도 어떤 말로 위로가 될 수 없고 아직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알려야 할지 마음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렇게 공개된 명단을 통해 소식을 처음 접할 친적과 지인들의 충격, 그분들에게 그제야 설명해야 할 유족의 심정을 상상해 보라”며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데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