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안전운임제 강력 반발… 파업 현실화 땐 장기화 우려
화물연대, 안전운임제 유지 요구
“일몰제 폐지·적용품목 확대를”
재계는 운임 상승 내세워 반대
여야, 일몰 시한 3년 연장 ‘이견’
24일 무기한 파업 돌입을 경고한 화물연대는 정부에 안전운임제 유지, 적용품목 확대를 요구한다. 하지만 일몰제 폐지를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 데다 경영계에서는 운임 상승 문제 등으로 안전운임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이하 화물연대)는 24일 0시부로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다고 23일 밝혔다. 화물연대는 약 2만 5000명의 조합원이 참여하는 이번 파업을 통해 정부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적용품목 확대를 요구한다. 안전운임제는 안전 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경우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로 2020년 도입됐다. 도입 당시 3년이 지나면 제도 효력이 없어지는 일몰제가 적용됐지만 화물연대는 일몰제를 폐지하고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도 기존 품목(컨테이너, 시멘트)에 더해 철강재, 자동차, 위험물, 사료·곡물, 택배 지·간선 등 5개 품목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경제단체는 안전운임제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화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제도라면서 운임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맞선다.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6개 경제단체는 지난 22일 성명을 발표하고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파업) 계획 철회와 안전운임제 폐지를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에서 “현재 우리 경제는 올해 10월까지 7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등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며 “수출과 경제에 미칠 심각한 피해를 고려해 화물연대 측이 즉각 운송거부를 철회하고 차주·운송업체·화주 간 상생협력에 나서 달라”고 요구했다. 또 안전운임제에 대해서도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물류비 급등을 초래하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제도”라면서 “일일 운행 시간 제한, 휴게시간 보장, 디지털 운행기록 제출 의무화 등 과학적·실증적 방법으로 화물차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선언하자 정부와 여당은 지난 22일 당정 협의를 거쳐 안전운임제 일몰 시한을 3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안전운임제 적용 화물 품목을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법 개정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 측도 정부와 여당의 논의 내용에 대해 화물연대가 동의한 적 없는 ‘가짜 연장안’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둘러싸고 화물연대의 파업이 길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부산항도 수출화물을 조기에 반입하고, 파업 장기화에 대비해 임시장치장을 확보하는 등 대비에 나섰다. 부산항만공사(BPA)와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터미널 운영사와 협조해 수출화물에 대해 선적 3일 전부터 반입이 가능한 제한기준을 5일 이상으로 완화해 수출화물이 파업 전 조기에 부두로 반입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수입화물과 야적장 내 장기 적체화물은 신속히 반출해 부두 혼잡도를 낮추는 사전조치를 취하는 중이다. BPA는 파업을 하루 앞두고 배후단지 등에 컨테이너를 보관할 수 있는 임시장치장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부산항 신항의 경우 부두 간에는 내부통로를 이용해 화물을 운송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부산항 내에서 부두나 선석을 옮겨 가며 화물작업을 한 경우 선사들이 추가로 부담한 비용을 일부 지원해 터미널 내 물류 지장을 최소화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관세청도 화물연대 파업에 대비해 비상 통관체계를 가동한다. 관세청은 먼저 수출신고가 수리된 날부터 30일 이내 선적이 어려운 경우 구비서류 없이 적재기한을 연장하기로 했다. 수입신고된 물품을 15일 이내에 보세구역에서 반출하지 못할 때도 화물 운송이 정상화될 때까지 반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또 파업으로 차량 이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부산항 내 북항과 신항 사이 화물 운송 때도 국제무역선을 이용하도록 한다. 규정상 환적화물은 국제항을 오갈 때만 국제무역선으로 운송하게 돼 있다.
선사 등 업계도 선박 스케줄을 조정하고 환적화물 처리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북항의 경우 신항처럼 부두간 통로가 없어서 환적화물의 경우 배로 이동을 해야 해서 스케줄을 알아보고 있다”며 “배차도 어렵고, 보세창고에서 물건 빼는 것도 밀려서 창고 작업도 더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하루종일 운송사 수십 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겨우 1대 구했다. 아무래도 지난 6월에 물류 대란을 경험했다 보니 더 긴장하고 있다”며 “장치율(컨테이너를 쌓아 둔 비율)이 올라가면 항만 기능자체가 마비되니 이 부분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