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 항만이라 ‘안도’…부산 레미콘업 날벼락
부산항 최근접 지역의 역설
화물연대 사태로 재고 ‘구멍’
7일분 저장 사일로 텅 비어
소규모 건설현장에 ‘직격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총파업으로 부산지역 산업 전반에 걸쳐 피해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화물연대 집단운송 거부 닷새째인 28일 위기경보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육상 화물운송 분야에서 위기경보단계가 심각까지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종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대로 업무개시명령 카드를 본격 검토할 전망이다.
정부와 화물연대의 ‘강대강’ 대치로 가장 먼저 떨고 있는 곳은 부산의 레미콘 업계다. 파업으로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의 운행이 중단된 후 레미콘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재고를 긁어모아도 현재 레미콘 생산량은 평상시의 7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레미콘 업체가 갑작스런 재고 부족에 시달리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국 최대 수출입 항구인 부산항이 원인이다. 시멘트는 장기 보관이 어려운 품목 중 하나지만 부산 레미콘 업계는 인근에 있는 부산항을 활용해 수월하게 시멘트 재고 관리를 해왔다. 실제로 한 레미콘 업체는 “다른 지역에서 하루에 3~4번 부산항을 왕복할 동안 우리는 10번도 넘게 왕복이 가능했다”며 “재고 관리에서 부산은 장점이 많아 회사 소유 BCT를 많이 보유할 이유가 크게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집단운송거부 사태가 터지자 부산항과 거리가 먼 지역은 다량의 회사 BCT를 활용해 시멘트를 차량에 적재해 둔 상태지만 부산 업체는 날벼락을 맞게 됐다. 부산레미콘협동조합 관계자는 “시멘트를 비롯한 레미콘 생산에 필요한 재료를 보관하는 사일로에는 7일 정도의 재료를 보관할 수 있지만 최근 원자재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상승하고 수급도 불안정해 업체마다 재고가 2~3일밖에 없었고 파업이 지속되면 이제 바닥이다"고 전했다.
레미콘 업체의 위기는 곧바로 이들에게서 물량을 공급받는 건설업계의 위기로 직결될 전망이다. 특히 적재 공간이 부족해 레미콘 비축량이 적은 소규모 건설 작업장일수록 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레미콘 생산량이 줄어들면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나 규모가 큰 사업장을 중심으로 레미콘이 제공되는데 이와 반대로 소규모 업체는 바로 타격이 온다”고 불안해했다.
부산항의 가동율이 바닥을 치면서 부산의 수출제조업체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5개월 만에 재개된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전국에서도 가장 많은 수출 물량을 처리해 내는 부산항의 가동율은 30%가 미만을 유지 중이다. 수출제조업계 입장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이 막을 내리면서 본격적인 매출이 회복세를 탔고, 업체마다 연 매출 결산 등을 앞두고 있는 연말이라 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치명적이다.
수출제조업체마다 연말 최종 납품 기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당장 이달 말까지 납기가 예정된 업체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지만, 납기가 다음달 초에 몰린 업체는 발만 구르고 있다.
한 수출제조업체 담당자는 “지난주 화물연대 때문에 부산항 진입에 실패해서 납기를 이번 주 수요일로 늦췄는데 오늘도 컨테이너를 확보하지 못해 막막하다”며 “컨테이너 기사들이 화물연대 대응에 겁을 먹고 있어 항 내에 쌓여 있는 우리 수입 물품을 빼오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 물량의 반출고 운송에 애를 먹는 곳도 있다. 주유소 등 유류업계다. 일단 현재까지는 주유소마다 자체적으로 차량을 보유한 곳도 많아 가시적인 피해가 없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해를 넘길 경우 피해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부산상공회의소도 정부와 화물연대의 협상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울러 28일 협상이 불발되면 당장 29일부터 업체들을 상대로 피해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수입업체의 경우 상시로 물량 재고를 확보하고 운영을 하기 때문에 상당 기간 버틸 수 있지만 당장 납품 기일이 걸려 있는 수출업체는 입장이 다르다"며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업체별 피해 상황 등을 집계하는 등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