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남해안 멍게 때이른 폐사에 어민들 냉가슴
풍작 기대감 한순간 ‘흐물흐물’
폐사 직전 출하 당기자 가격 뚝
“올해는 돈 좀 되나 했는데…”. 16일 오전 경남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바닷가. 길게 뻗은 물양장을 따라 지붕을 얹은 뗏목이 촘촘히 줄지어 떠 있다.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멍게(우렁쉥이) 수확 작업장이다. 10여 명 남짓 무리지은 어민들이 굵은 밧줄(봉줄)에 붙은 멍게를 훑어 내느라 분주하다. 바닥에 펼쳐 바닷물로 씻어내니 울긋불긋한 특유의 빛이 살아난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에 아이 볼 마냥 토실하다. 2년 넘게 애지중지 키워 낸 최상품이다.
여름을 잘 견뎌낸 덕분에 작황이 좋은 데다, 겨우내 성장도 잘돼 예년보다 보름 정도 일찍 출하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어민들 표정이 밝지 않다. 최근 일부 어장에서 폐사가 비치기 시작한 탓이다.
한 어민은 “작년, 재작년 손해본 거 만회하려면 갈 길이 먼데 바다 환경이 어찌 될지 모르니 불안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철 맞은 남해안 멍게 양식업계가 울상이다. 모처럼 풍작을 맞나 했는데, 때이른 폐사 확산 우려에 발목이 잡힐 판이다. 그나마 괜찮은 것들도 폐사를 피해 출하를 서두르는 물량이 몰리면서 어민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최대 멍게 양식 어민단체인 멍게수협은 16일 올해 첫 경매를 열고 2023년산 햇멍게 출하를 알렸다. 경남 통영과 거제 앞바다에 밀집한 멍게 양식장은 250여 ha, 축구장 400개를 합친 규모다. 매년 2월부터 6월까지 출하 작업을 이어간다.
지난해 집단폐사로 홍역을 치렀던 어민들로선 올해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작년 이맘땐, 그 전 여름 이상 고온에 이은 빈산소수괴(산소부족 물덩어리) 확산으로 남해안 멍게 양식장 태반이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멍게는 껍질이 얇아 고수온에 더 취약하다. 적정 수온이 10~20도로 24도를 넘어서면 성장이 느려지고 껍질이 쪼그라들거나 녹아버린다. 이 때문에 2020년 2만 6211t이던 남해안 멍게 생산량은 이듬해 1만2433만t, 지난해 1만 1842톤으로 급감했다.
반면 작년 여름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 연말까지만 해도 풍작을 의심하지 않은 만큼 상태가 좋았다. 그런데 설 명절을 전후해 일부 어장에서 폐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수협 관계자는 “통상 여름만 잘 견디면 수온이 오르는 3~4월까지는 잘 버티는데, 올해는 1월부터 폐사가 확인됐다”고 했다. 이를 두고 어민들 사이에선 ‘먹이생물 부족’이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정된 먹이를 놓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폐사가 적었던 게 경쟁을 부추겼다는 주장이다. 한 어민은 “출하를 앞두고 외해에 있던 멍게들이 대거 내만으로 들어왔다. 비좁은 해역에 너무 많은 생물이 집중되다 보니 먹이가 없어 폐사로 이어진 듯 하다”고 했다.
어민들 마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폐사가 발생한 어장에선 다년산 멍게는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피해를 막으려면 폐사하기 전에 출하해야 한다. 폐사 걱정에 어민들이 경쟁적으로 출하에 나서면서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껍질을 제거하지 않은 활멍게는 어민과 중간 유통상 역할을 하는 물차(활어차) 간 직거래로 전국 각지에 공급된다. 가격은 주로 유통망을 쥔 물차가 결정한다. 물량이 넘쳐나다 보니 최상품만 골라 담아도 50kg들이 1상자 14만 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작년 이맘땐 못해도 18만 원은 받던 것들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초반인데도 30곳 이상이 작업을 개시했다”면서 “싱싱한 우리 수산물 많이 드셔서 소비도 늘고 제값도 받길 바란다”고 전했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