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보다 장사 더 안된다”… 물가 폭등 지갑 닫는 소비자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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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값 껑충 뛰고 외식 발길 ‘뚝’
“지역 상권 조만간 벼랑 몰릴 것”
공공요금·가공식품 가격 급등
물가 상승률 9개월째 5%대 유지
1만 원 넘는 점심값 직장인 부담
편의점 도시락 이용자 급증세

고물가가 지속하면서 서민들이 외식 등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23일 부산의 한 식당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고물가가 지속하면서 서민들이 외식 등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23일 부산의 한 식당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 동래구 수안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조규범(53) 씨는 요즘 재료비 내역서와 매출 거래가 적힌 전표를 확인하기가 두렵다. 최근 물가가 급등해 가게 재료비가 확 올랐기 때문이다. 청양고추의 경우 평소 식자재 마트에서 구매하는데, 올해 초까지 kg당 6000원대였던 가격이 현재는 2만 3000원으로 4배가량 뛰었다. 튀김용 식용유는 코로나 직전엔 2만 5000원이었지만, 현재는 6만 6000원에 산다. 게다가 고물가로 외식이 부담스러운 손님들의 발길도 끊겨 이중고를 겪고 있다.

부산시청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하던 김지환(44) 씨는 최근 가게 운영권을 다른 사업자에게 넘겼다. 김 씨는 “채소 등 각종 재료 가격이 급상승했는데 판매 가격은 1000~2000원 정도밖에 올리지 못해 손님도 줄어 버티기 힘들었다”며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더 많은 자영업자가 조만간 벼랑 끝에 내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금리와 고물가로 시민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지역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상당수 자영업자는 코로나로 영업시간 제한이 있던 때보다도 더 장사가 되지 않는다며 하소연한다. 시민들은 외식 대신 집밥을 찾지만, 시장 물가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동기보다 5.2% 올랐다. 지난해 12월 5%보다 다소 상승한 수치로 지난해 5월부터 9개월째 5%대의 고물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2021년 4월(2.5%)부터 지난달까지 22개월째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훨씬 웃돌고 있다.

특히 지난달 공공요금이 급등했다. 전기·가스·수도 물가는 1년 전보다 28.3% 올라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도시가스 물가는 36.2%, 지역 난방비는 34.0%, 전기료는 29.5%, 상수도료는 4.0% 올랐다.

여기에 가공식품 가격 오름세도 만만치 않았다. 가공식품은 10.3% 올랐는데 품목별로는 커피가 17.5%, 빵이 14.8%, 스낵과자가 14% 뛰었다. 특히 한파로 채솟값이 올라 서민들의 타격이 크다. 농협공판장 반여공판장에 따르면, 지난 22일 청양고추 특등급은 kg당 평균 1만 6952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5477원보다 3배가량 뛴 가격이다.

주부 유시연(47·동구) 씨는 최근 외식을 줄였다. 4인 가족이 예전에는 6만~7만 원이면 삼겹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10만 원을 넘는다. 집밥을 위한 장 보기도 만만치 않다. 예전에는 2만~3만 원이면 4인 가족 한 끼 식사 장을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체감상 배가량 올랐다. 가스비도 지난달 28만 원이나 나와 지난해 1월 15만 원에 비해 배가량 뛰었다.

유 씨는 “마트에서 청양고추 10개에 2000원 정도 했는데 요즘엔 5000~6000원으로 감당이 안 될 지경이다”고 말했다.

부산에서도 최근 점심 식대가 1만 원을 넘어 직장인들의 부담도 가중됐다. 모바일 식권 서비스를 운영하는 ‘식신’이 자사 서비스인 ‘식신e식권’을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부산의 평균 식대 결제 금액은 1만 1808원으로 서울(1만 2285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이 같은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 때문에 직장인들의 편의점 도시락 이용이 급증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비용의 절반 수준인 4000~6000원이면 밥과 반찬 대여섯 가지로 구성된 한 끼를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GS25 편의점의 대표적인 가성비 도시락인 ‘김혜자 도시락’은 2017년 단종 이후 6년 만에 이번 달 재출시됐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 가성비를 내세워 출시하자마자 인기를 끈 김혜자 도시락은 다시 불황이 엄습한 올해 재출시와 동시에 GS25가 판매하는 모든 식품류 중 매출 1위에 올랐다.

직장인 이동호(36·해운대구) 씨는 “최근 물가를 보면 사실상 월급과 공기 빼고 안 오른 가격이 없을 정도”라면서 “점심시간 회사 주변에는 편의점 도시락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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