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봄나들이] 경남도립미술관, 대가의 깊이감와 청년의 다양함을 보다
통영 출신 조각가 심문섭 대형 회고전
김예림, 이혁, 정현준, 조현수, 한혜림
경남 활동 신진 작가의 새로운 시선도
나들이하기 좋은 5월이다. 일상을 벗어난 봄나들이에 예술을 더하면 만족은 배가 된다. 경남과 울산의 미술관에서 전시 감상 시간을 가져볼 것을 제안한다.
■고향 통영 바다가 작품 속으로
경남도립미술관은 통영 출신 조각가 심문섭의 대형 회고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한 스무 살 무렵 시작된 작가의 60년 예술 항해를 보여준다. ‘장을 열다’ ‘자연의 감각: 무한의 질서’ ‘반(反)조각의 확장’과 아카이브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1층 입구의 대형 철 조각은 거대한 배를 연상시킨다. 철판을 구부리고 부식시키거나 캔버스를 샌드페이퍼로 갈아낸 ‘현전’, 나무나 돌에 자연적 요소를 도입한 ‘제시’, 기성품이 원 기능을 벗어난 ‘반추’ 까지. 물성을 탐구하고 조각의 영역을 확장한 여러 시리즈가 전시된다. ‘목신’ 시리즈에서 끌로 반복해서 파낸 자국이 물결처럼 반짝이며 감탄사를 자아낸다. 회화 ‘제시-섬으로’는 붓질로 거대한 파도를 그려낸 듯하다. 2층에 전시된 ‘토상’ 시리즈에서는 테라코타의 표면이 주는 아름다움도 느껴진다.
심 작가는 자신이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 바다에서 놀던 기억이 하나의 표현 요소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화면 위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심 작가의 작품에서는 시간성도 중요한 요소이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눈앞에 보이도록 시각화하여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것.’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는 물결과 리듬도 이 시간성으로 이어진다. 경남도립미술관은 이번 전시와 연계해서 18일 오후 3시 큐레이터 토크를 연다. ▶‘심문섭: 시간의 항해’=6월 25일까지 1·2·3전시실.
■신진 작가 5인, 느려도 아름다운 춤
‘N 아티스트’는 경남도립미술관이 신진 작가를 발굴·지원하는 격년제 전시이다. 올해 신진 작가 지원전의 제목은 ‘더 느리게 춤추라’로, 데이비드 L. 웨더포드의 시에서 가져왔다.
김예림 작가는 자신이 느끼는 수없이 많은 또는 모순된 감정을 은유적 이미지로 그려낸다. 작가는 가족 앨범·영화·웹서핑 등을 통해 이미지를 수집하고, 수집된 이미지를 나열해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기억의 관계 등을 드러낸다. 작가는 여러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모순되고 모호한 감정을 보여준다.
이혁 작가는 탈북자 출신이다. 북한에서 7년 정도 그림을 배운 작가는 19살에 탈북하며 그림을 포기했다. 직장인의 삶을 준비하던 그는 같이 탈북한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 대학원에 진학, 다시 미술을 시작한다. 북한과 너무 다른 한국의 미술에 혼란을 느낀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개를 그린 자화상 시리즈에서는 이주민으로 한국에 온 본인의 모습과 한국 사회와의 관계를 드러낸다. 산수화 시리즈는 자본이나 이념이 개입할 수 없는 이상향으로, 작가가 그리워하는 대상과 만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표현했다.
정현준 작가의 작업은 고향 친구와 나눈 대화가 계기가 됐다. 배달 라이더인 친구는 술값을 내며 ‘내 요새 돈 좀 번다. 목숨 걸고 타면 700~800은 번다’고 말했다. ‘정의훈에게’는 작가의 자전적 영상 작업이다. 정의훈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며 가족과 주변인들의 삶과 그 이면 이야기를 담아낸 약 28분 길이의 영상 작품인데, 몰입도가 높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조현수 작가는 동을 얇게 저민 박을 종이 위에 붙여 형태를 만들고 이를 부식시켜 회화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닥종이에 나무숲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을 천장에 걸어 설치했다. 관람객들은 자연의 ‘완전한 풍경’ 속을 산책할 수 있다.
한혜림 작가는 남겨진 목소리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5채널 비디오 ‘파도라도’는 작가의 할머니가 노래하는 목소리 녹음 파일을 이용했다. 소리가 재생될 때 일어나는 파형에 몸짓의 영상을 더해 존재와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N ARTIST 2023: 더 느리게 춤추라’=8월 27일까지 4·5전시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