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덩치 걸맞은 합리적 인사·예산 시스템 갖춰야 [BIFF, 위기를 기회로]
3. 혁신 통해 새 30년 준비를
1인 권한 집중된 정관 손질 절실
새 이사장 선임 방식 논의도 시급
영화제 정체성·방향성 재점검도
부산 영상산업 연계 강화도 숙제
세대·성별 안배 혁신위 구성 필요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인사 내홍 사태로 불거진 해묵은 문제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4일 열린 BIFF 이사회에서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사회 측은 “BIFF의 새로운 비전과 발전 방향 설정, 누적된 문제 점검, 차후 신규 이사장 선임, 30주년 준비 등을 위한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래 비전 로드맵 만들어야
영화계에서는 1996년 BIFF가 첫 행사를 개최한 뒤 20여 년 동안 급격한 성장을 이어오면서 외형만 커졌지 그에 걸맞은 시스템은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4년 ‘다이빙벨 사태’ 이후 개정된 정관은 이사장 1인에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문제가 있는 데도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새로 구성될 혁신위원회는 정관 개정을 비롯한 영화제 전반의 낡은 시스템을 손봐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부산대영화연구소 문관규 소장은 “정관 개정, 인사 쇄신안뿐 아니라 30주년을 앞둔 BIFF의 미래 비전을 위한 로드맵까지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이번에 문제된 인사를 쇄신할 수 있는 외부 인사위원회 구성,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시스템 정착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BIFF 이용관 이사장이 올해 영화제 후 사퇴하기로 한 만큼 새 이사장 선임 방식 논의도 시급한 상황이다. 공모제 도입이나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같은 다양한 인선 방식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밖에 혁신위원회가 앞으로 다뤄야 할 의제로 △영화제 정체성과 방향성 재점검 △인적 쇄신 △조직 개편 △합리적인 예산·회계 시스템 마련 등이 꼽힌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오민욱 대표는 “영화제가 협찬에 의존하다 보면 스폰서가 만족할 만한 마케팅 효과를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외형을 키우게 마련”이라며 “영화제가 정체성을 갖고 성장한다기보다 점점 비대해지는 상황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BIFF 혁신안에 지역 영화·영상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안이 담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한 영화·영상 제작자는 “부산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가 열리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며 “영화제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많지만, 그만큼 지역 영화·영상 산업 발전을 이끌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세대·성별 안배를
BIFF 이사회는 다음 달 2일 열릴 이사회 때 혁신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구체적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인적 구성은 중립적, 객관적, 독립적인 영화제 안팎 인사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BIFF 이사 일부를 포함하고, 젊은 영화인 등 영화계 인사, 시민사회 등 외부 인사들까지 포함시키겠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영화계에서는 혁신위원회 구성에서부터 세대별, 성별로 안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토론토영화제와 로카르노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영화제의 경우 젠더와 다양성 이슈를 반영해 여성 위원장을 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면, BIFF는 남성 창립 멤버 중심의 임원 구조가 3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영화배우 강수연 씨가 2015년 이 이사장과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지만, ‘다이빙벨’ 사태 후 비상 상황에서의 예외적인 사례로 꼽힌다.
여성영화인모임 김선아 대표는 “기존의 BIFF는 남성주의적이고 90년대식 리더십에 의지해 왔다”며 “영화산업 안에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성장 등 미디어 융합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 다양성 관점에서 성별, 세대별 배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한 영화학과 교수는 “혁신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서부터 BIFF의 혁신 의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직 진단을 비롯한 외부의 행정, 경영 전문가를 넣을 필요성도 있다. 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을 누가 맡을지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혁신위원회 운영 시기와 관련해 새 이사장 임명 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열어두는 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논리다. 영화진흥위원회 박기용 위원장은 “새 이사장이 선임된 뒤에 새 집행부가 중심이 돼 비전 제시와 혁신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올해 경기가 좋지 않아 협찬 문제 등에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당장은 올해 영화제를 잘 치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끝-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