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두 못 내는 아빠 육아휴직… 부산, 이유 있는 ‘저출생 1번지’ [이슈 추적, 왜?]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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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 왜?] 남성 육아휴직 비율 만년 하위권

부산, 전국서 3번째로 낮은 25%
다른 시도와 갈수록 격차 벌어져
소규모 제조업 많은 산업구조 탓
인력 부족·저임금 문제로 발목
가족친화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진입 문턱 낮춘 부산형 제도 필요

0.72명. 지난해 부산의 처참한 합계출생률이다. 전국 17개 시도 중 두 번째로 낮은 기록이다. 부산은 왜 만년 출생률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우연히(?)도 부산이 출생률 관련 지표 중 최하위권에 머무는 또 하나의 분야가 있다. ‘아빠 육아 휴직 비율’이다. 최근 출생률 반등에 성공한 독일과 북유럽이 공들였던 부분이 바로 남성 육아휴직이다.

전국의 남성 육아휴직 비율(신규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꾸준한 증가세다. 2019년 평균 21%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 말 29%까지 올랐다. 지난해 16개 시도 중 8곳이 30%를 넘겼다. 1위는 울산인데, 전체 육아휴직자 중 무려 38%가 남성이었다.

부산에서도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늘고는 있지만 속도가 더디다. 지난해 25%로 전국에서 3번째로 낮았다. 2019년과 비교해 보자. 인천, 대전 등은 10%포인트(P) 이상 오르며 중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지만, 부산은 매년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지난 5월까지만 봐도 부산의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은 24%로 지난해보다 떨어졌다.


■“일손 없는데 어떻게 자리 비우나”

부산의 낮은 남성 육아휴직 비율은 열악한 산업 구조와 미흡한 지자체 대책 등을 반영한다.

부산의 30대 초중반 남성 노동자들은 "육아휴직은 언감생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사내 분위기’. 2021년 인구보건복지협회 설문조사에서도 남성 노동자는 1순위로 ‘남성은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는 직장 분위기’(47.5%)를 꼽았다.

부산은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사내 분위기가 특히 엄격한 곳이다. 상대적으로 소규모 제조업, 도소매업이 많은 산업 구조 특성 때문이다. 이들 산업은 젊은 세대에 비인기 일자리로 꼽혀 극심한 인력난을 호소한다.

강서구의 한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김 모(35) 씨는 “육아휴직 얘기를 꺼냈더니 사장이 ‘대체 인력을 못 구하면 공장을 멈춰야 할 수도 있다’고 맞받아치더라”라며 “육체적인 일이 많고 근무지의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일할 사람이 없긴 하다”고 말했다.

사하구에서 일하는 송 모(34) 씨는 “공고를 낸 정규직도 잘 안 뽑히는데 어떻게 육아휴직 얘기를 할 수 있겠나”라면서 “최근에는 주 52시간 근로로 일손이 더 부족해져 육아휴직도 멀어졌다”고 호소했다. 실제 지난 1~5월 부산의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 9000명 감소한 상태다.

서비스직, IT 등의 분야는 접근성이 괜찮고 육체적 노동도 덜하다 보니 비교적 인력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워낙 소규모 업체가 많아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우는 것에 심리적 부담감이 상당하다. 부산진구의 한 연구용역업체에 근무하는 김 모(36) 씨는 “남자 직원만 수십 명 되지만 여태껏 육아휴직을 쓴 ‘용자’가 한 명도 없다”며 “승진이 물 건너갈 뿐더러 대체 인력이 들어오면 내 책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저임금 일자리 수두룩…대책 헛바퀴

‘아빠 육아휴직’을 꺼리는 두 번째 이유는 급여다. 부산은 소규모 기업과 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곳으로 꼽힌다. 부산노동권익센터가 올 초 부산의 30인 미만 소규모 제조업 노동자 5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보니 월평균 임금은 276만 원이었다. 지난해 전국 제조업체의 월평균 임금 약 343만 원을 크게 밑돈다.

30대 근로자들은 안 그래도 빠듯한 생활비에 최근 고금리 상황까지 겹쳐 육아휴직을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10여 년간 공무원으로 일해온 이 모(39) 씨는 “계산해 보니 육아휴직 급여의 3분의 2가 대출금 이자로 나가더라”며 “애를 낳는 시기에 대부분 이 정도 대출을 끼고 내 집을 마련한다. 육아휴직 때 대출상환 유예라도 좀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육아휴직 시 급여 상한액은 150만 원 정도다. 게다가 25%는 사후 지급금이어서 복직 후 지급된다. 물론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쓰거나 순차적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상한액이 최대 300만 원까지 늘어난다. 부산 동구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 모(35) 씨는 “외벌이 가정인데 자녀 2명을 키운다. 육아휴직을 하면 월급이 100만 원 초반으로 확 줄어든다”면서 “육아휴직 급여제도 자체가 맞벌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외벌이라도 다자녀라면 홀로 돌봄이 어렵기 때문에 남성 육아휴직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지난해 월 30만 원 수준으로 중소사업체 남성 육아휴직 장려금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2년째 부산시의회에서 예산 통과가 무산됐다. 시 관계자는 “부산은 최근 일·생활 균형 지수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보육 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둘러 ‘부산형 가족친화인증기업 제도’를 도입하길 권한다. 가족친화인증기업은 남성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기업 등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여성가족부가 시행 중이지만, 진입 문턱을 더 낮춘 부산형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성 위주의 대체 인력 연계 사업도 남성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산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 최청락 책임연구위원은 “지역 CEO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면서 “인력 수급 문제만 호소할 게 아니라, 역발상으로 먼저 육아휴직 등 복지를 활성화해 젊은 세대를 끌어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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