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의 사투’ 생업 전선, 안전은 뒷전
땡볕에 다누비열차 매달린 안전원
얼음물도 없이 종일 무더위 노출
실내 주차장 카트 정리 마트 직원
찜통 같은 차량 열기에 녹초 신세
작업에 쉼표 찍을 제도 마련 절실
폭염경보가 나흘째 이어진 부산 곳곳에서 ‘살인 더위’가 생업 전선에 나선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냉방 시설이 없는 공간이나 뙤약볕 아래 일터는 말 그대로 폭염과의 사투 현장이 되고 있다.
주말이던 지난달 30일 부산의 대표 관광지인 영도구 태종대 유원지에서 다누비열차가 관광객 사이를 누비며 순회했다. 잠시만 서 있어도 팥죽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다. 다누비열차 안전원은 탑승 안내와 안전 업무를 위해 열차 꼬리 칸에 하루 총 6시간을 서 있어야 한다. 바닥은 철제 발판이어서 뜨거운 열기가 발바닥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안전원은 열차 운행 중간중간에 뜨거워진 발바닥을 잠시 식히고자 양쪽 발을 하나씩 살짝 번갈아 들기도 했다.
안전원은 ‘가마솥더위’에 하루 종일 노출되면서도 탈진 상태에 가까워진 몸을 가눌 여유조차 없다. 열차가 태종대 유원지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25분인데, 8분 간격으로 운행되기 때문이다. 주말 근무 인원은 5명뿐이어서 식사 시간이 아니면 길게 휴식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부산관광공사와 운영 용역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소속 안전원들은 얼음물 하나도 제공받지 못할 정도로 원하청 모두로부터 소외당했다. 8년째 일해 온 안전원 김 모(47) 씨는 “휴가가 절정일 때 관광객이 몰려 일은 배가 된다. 전례 없는 무더위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안전원의 건강과 안전은 다들 관심 밖”이라고 말했다.
뙤약볕 아래 야외 노동자에게 폭염은 재난이다. 중구청 소속 방역요원 오 모(23) 씨는 31일 오후 1시 30분께 10kg 정도 되는 배낭형 분무기를 등에 지고 모기 등 해충 구제를 위해 동광동 일대에서 방역 작업을 진행했다. 오 씨의 작업복은 이미 땀으로 까맣게 얼룩졌다. 오 씨는 “여름에는 한창 덥기 직전인 오전에 방역을 진행하지만 주민 민원이 들어오면 한낮에도 방역한다”며 “분무기 발열 때문에 체감 온도는 훨씬 더 높다”고 말했다.
이동 노동자도 폭염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하루 중 제일 더운 점심 시간, 라이더는 헬멧을 쓰고 뜨겁게 달궈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를 달려야 한다. 헬멧을 벗으면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진다. 무더운 시간대에는 야외 작업을 피하라는 정부의 권고사항을 모르는 라이더는 없지만 배달 콜 수락을 멈출 수 없다. 그나마 피크타임이 지나 쉬려고 해도 부산에 이동 노동자 쉼터는 겨우 3곳뿐이라 마땅히 휴식할 장소도 없다.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만난 라이더 이 모(35) 씨는 “생계를 이어가려면 비가 오든 덥든 일을 계속해야 한다”며 “쉬는 데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 이동 노동자 쉼터가 여러 곳에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내도 불볕더위에서 안전지대는 아니다. 수영구의 한 외국계 대형마트 2층 주차장은 벽면이 뚫려 햇볕에 그대로 노출된다. 차량 열기로 후텁지근해 숨을 턱 막히게 하는 공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물건을 사러 온 이용객들도 “너무 덥다”며 연신 손부채질을 할 정도였다. 적절한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청소와 안내를 하는 마트 직원들은 에스컬레이터 사이에 놓인 작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했다. 카트를 정리하던 직원은 2층 주차장에 쭉 늘어선 카트를 1층 야외로 쉴 틈 없이 옮기며 무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부산의 다른 대형마트에서 카트 정리 업무를 하는 직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숙견 상임활동가는 “해를 거듭할수록 폭염이 심해진다. 노동자 안전을 위해 지나친 폭염에는 잠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