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산시 ‘세계유산’ 훼손 논란 ‘김병주 도서관’ 추진
200억 기부해 짓겠다는 자산가
부산항 1부두 최적지 선택하자
시, 넙죽 건립 추진 절차 진행해
잠정 등재 근현대 유산 훼손 땐
유네스코 신청 노력 물거품 우려
엑스포 유치에도 악영향 가능성
부산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부산항 1부두에 기부금으로 도서관 건립을 추진해 문화유산 훼손에 앞장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산항 1부두는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결정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곳 중 핵심 장소인데, 세계유산 특성상 새 건축물 건립은 허용되지 않는다. 부산항 1부두가 2030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핵심 전략인 ‘부산 이니셔티브’를 상징하는 장소인 만큼 도서관 건립 사업으로 엑스포 정신과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8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시는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구역 1부두 내 물류창고 일원 4000여 ㎡(약 1200평)에 도서관 건립을 추진한다.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이 지난 3월 사재 200억 원을 기부해 그의 이름을 내건 도서관을 짓고 싶다고 시에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모펀드투자 그룹으로 알려진 MBK파트너스의 김 회장은 국내 1위의 자산가다. 그는 앞서 2021년 8월에는 서울시에 도서관 건립을 위해 개인재산 300억 원을 기부한 적이 있다. 서울시는 서대문구 북가좌동 서울시립도서관 건립 사업비를 김 회장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도서관 이름은 ‘서울시립김병주도서관’으로 할 예정이다. 도서관 준공, 개관은 2025년 예정이다.
시는 김 회장의 기부 제안을 받고 북항 1단계 재개발지역에서 도서관 건립 후보지 3곳을 압축해 제안했다. 김 회장은 지난 5월 부산을 방문해 후보지를 직접 둘러봤다. 당시 부산항 1부두를 가장 먼저 방문하고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는 이에 따라 다음달 10일께 김 회장 측과 기부금 약정식을 체결하기로 계획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다.
문제는 도서관 건립이 확실시되는 부산항 1부두는 시가 2015년부터 추진해 지난해 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에 성공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개 장소 중 핵심이라는 점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여러 요건이 필요하지만 유산 보호가 필수적이다. 일단 잠정목록에 등재된 유산구역에는 새 건축물을 짓는 것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는 유산 보호는커녕 유산구역 일부를 훼손하고 새로 도서관을 짓기로 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반발을 사고 있다.
뒤늦게 부산항 1부두에 도서관 신축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문화재청은 부산시와 협의에 나섰다. 이에 시는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전문가들에게 유산구역 보존관리계획에 대한 자문을 받았고, 그 결과 ‘유산구역 훼손 시 잠정목록 등재가 철회될 수 있다’는 의견을 들었다.
시가 지난 2일 올해 들어 처음 개최한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전문가, 교수의 극렬한 반대 의견이 개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30일 두번째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려 이 사안에 대한 의견을 다시 한번 청취한다.
‘부산 이니셔티브’를 상징하는 부산항 1부두에 도서관을 건립하기로 하자 엑스포 정신과 가치가 흔들리고, 엑스포 유치에 적신호가 켜질 것이라는 우려까지도 나온다.
경성대 강동진 도시공학과 교수는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켜낸 도시다. 부산항 1부두는 그런 부산의 도시 정체성을 함축한 장소”라면서 “이런 곳에 누군가의 이름이 걸린 도서관을 짓는다는 것은 도시의 정체성과 가치를 무시하는 발상”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