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니셔티브 장소’에 건립… 엑스포 유치 ‘걸림돌’되나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00억 기부 도서관’ 입지 논란]

2015년부터 유네스코 등재 총력
올해 시 등록문화재 결정 예정지
도서관 건립 땐 9년 공든 탑 ‘수포’
“엑스포 주무대 변형 부정적” 우려
문화재청 “새 건축물 있으면 불리”
시 “부산항 시민 향유 목적 추진”

부산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부산항 1부두에 수백억 기부금으로 도서관 건립 추진에 나서 비판이 거세다. 28일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항 1부두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부산항 1부두에 수백억 기부금으로 도서관 건립 추진에 나서 비판이 거세다. 28일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항 1부두 전경.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품은 부산항 1부두에 부산시가 재력가로부터 기부금 200억 원을 받아 도서관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시는 근대문화유산을 방치하는 것보다 도서관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시민들과 공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잠정목록에 등재된 유산구역 내에 건축물을 짓는 것은 세계유산 등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발하고 있다.

■“부산항 1부두를 시민 품으로”

부산시는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추진에 따라 부산항 1부두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시민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부산항만공사가 지난 2020년 이같은 사업 계획을 만들고 1부두 내 복합문화공간을 어떻게 조성할지 13억 원을 들여 설계까지 마치기도 했다.

시는 MBK파트너스 측으로부터 도서관 건립을 위한 기부 제안을 받고,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부지 내 3곳을 예정지로 제안했다. 부산항 1부두 부지는 도서관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 조성 계획이 이미 수립돼 있었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곳은 부산시가 2015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노력해왔던 장소들이다. 2022년 12월 8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잠정목록 등재 결정을 통보받았고, 이어 올해 5월 16일에는 유네스코에서도 잠정목록 등재가 완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서구의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부산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중구의 국립중앙관상대(구 부산측후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현 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등 9곳이다.

시는 특히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위해 핵심 장소인 부산항 1부두가 북항 재개발 사업 도중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시는 부산항만공사와 유산 보존을 위한 협의를 거쳐 기존 계획된 도로를 우회하도록 하고 매립계획도 변경해 부두의 원형을 보존했다. 1부두 부지 소유자인 부산항만공사가 소재지 관할 구인 중구에 부산시 등록문화재 등록 신청을 해, 올해 안에 부산시 등록문화재로 결정될 예정이기도 하다.

■국내 근대유산 최초 세계유산 도전 ‘비상’

전문가들은 근대유산이자 도심지 내 유산인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하는 것이 국내 첫 사례여서 매우 높은 의미를 부여해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까지는 우선등재목록 선정과 예비심사, 등재신청후보 및 등재신청대상 선정 등 국내외 절차들이 아직 남아 있다. 부산시는 오는 2028년까지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해왔지만, 부두 내 도서관 건립 추진으로 수년간 공을 들였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부산항 1부두가 2030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핵심 전략인 ‘부산 이니셔티브’를 상징하는 장소인 만큼 도서관 건립 사업으로 인해 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상당하다. 부산연구원 오재환 부원장은 “관점에 따라서는 엑스포 주요 무대인 북항1부두가 변형되는 게, 추후 엑스포 유치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근대유산 최초 세계유산 등재를 적극 지원해왔던 문화재청도 부산항 1부두 내 도서관 건립 사실을 확인하고 부산시와 지난 5월 긴급 협의에 나섰다. 이후 7월 말 세계유산전문가들은 부산시 측에 ‘부산항 1부두 물류창고 앞 부지에 건축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세계유산 등재가 철회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시 문화유산과는 물류창고 앞 부지에 부두 활용과 관련한 유물이 있는 것으로 확인돼 내년부터 원형조사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도서관 건립사업과 맞물려 현재는 원형조사 진행 여부를 고민 중이다. 내년에 있을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되기 위해 올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에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차철욱 소장은 “엑스포 전략으로 ‘부산 이니셔티브’ 강조하는 부산시가 한국전쟁 군수물자가 옮겨지고 피란민의 삶터였던 부산항 1부두의 가치를 세계유산으로 보존하지 않고 훼손하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는 시민들에게 공간을 내어 주면서 부산항의 역사성을 더 잘 알리고 향유하자는 취지에서 추진했다고 해명했다. 시 관계자는 “부산항만공사가 1부두 부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갖고 설계를 완료한 사례가 있어 이곳을 MBK 측에 제안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 세계유산 등재에 문제가 없도록 도서관 건립을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