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은 원전 핵폐기물 껴안고 살란 말인가
민주, 고준위 특별법 소위서 제동
친·탈원전 논란에 골든타임 날려
원전 밀집지 영구 폐기장화 우려
폐기물 반출 안 돼 원전해체 차질
2030년께 포화 땐 셧다운 불가피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설립 등 내용을 담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하 고준위 특별법) 논의가 또다시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 법안소위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회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의 몽니 속 특별법 처리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폐장 확보 논의가 흐지부지되면서 최악의 경우 ‘원전 셧다운’이라는 국가적 손실까지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간저장시설 영구화 우려까지 나오는 한편, 흔들리는 특별법에 부산·울산·경남 핵심 먹거리 사업인 원전해체 산업도 불투명해지면서 지역민 불만과 반발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20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고준위 특별법(민주당 김성환 의원·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 발의)과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발의한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전부개정법률안 심사가 논의될 예정이었지만, 소위 자체가 무산됐다. 민주당이 의사 일정을 일방 취소한 탓이다. 국감 이후 11월 소위에서 또다시 논의할 수도 있지만,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 속 여야가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낮아 ‘법안 폐기’ 가능성도 점쳐진다.
고준위 특별법 쟁점은 방폐장 확보 시점 명시 부분과 중간저장시설 저장용량 산정이다. 여당은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반출 시점을 비롯해 중간저장시설 2050년, 최종 처분시설 2060년 시점을 법에 명시하고 원전 운영허가 기간 중 발생량을 기준으로 저장시설 규모를 정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논의를 통해 최종처분시설 목표 시점을 명시하고 설계 수명 기간 중 발생량으로 규모를 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저장용량의 기준이 되는 ‘운영 허가 기간’과 ‘설계 수명 기간’은 여야가 대립하는 원전 에너지 정책과 직결된다. 야당안인 ‘설계수명 기간 발생량’으로 명시될 경우 원전은 계속운전을 할 수 없게 된다. 원전은 2025년 한빛1호기부터 40년의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설계수명 만료 원전은 2036년에 이르면 총 11기가 된다. 여당안은 원전 계속 운전 상황을 내포한 것이다.
여당은 핵심 쟁점인 저장용량에 대해 추후 야당안을 추가 검토할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달고, 처분시설 확보 시점에 대해 야당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지만 소위 불발로 이마저도 무산됐다. 일각에선 정부 에너지 정책 발목잡기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때 민주당 김성환 의원은 이 특별법을 발의해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민주당 태도가 바뀌었다. 통과가 시급한 법안 자체보다 정권 따라 입장이 번복된 것이다.
특별법 무산은 원전해체 산업에도 약영향을 끼친다. ‘영구정지 1호 원전’인 고리원전 1호기 해체를 위해선 사용후핵연료 반출이 이뤄져야 해 원전해체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원전 인접 지역민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최종 처분시설 확보 시점 명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간저장시설이 영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올초 발표한 정부 전망에 따르면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2031년 한울원전, 2032년 고리원전 순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민주당의 몽니로 고준위 특별법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특별법 처리가 무산될 경우 국가적 손실을 야기할 것”이라며 “이 특별법은 미래 세대의 국가 에너지 정책과 직결되고 지역에도 예민한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전향적으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