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 '볕 들 날'] 주민 주도로 주거환경 바꾸니… “동네 확 달라지고 삶도 활력”
[산복도로 '볕 들 날'] 4.국내 도시재생 성공 사례
제주 원도심 주거촌 남성마을
임대주택·공공공간·쉼터 조성
신당 팽나무 등 정체성도 공존
슬럼화 경기 안양 명학마을
주민 조합 결성 사업 방향 결정
스마트 하우스·공유주방 갖춰
대다수 도시재생은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된다. 어떤 도시재생이든 거리가 변하고 사람이 몰리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초기에 큰 기대로 시작한 도시재생은 반짝 효과를 내고 잊히는 경우가 대다수다. 반면 느리지만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미래를 일궈가는 도시재생도 있다. 후자에게는 주민이 주체가 돼 주민의 의견이 반영되고 주민이 만족하는 도시재생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옛 모습 남긴 채 주거환경 개선한 ‘남성마을’
지난달 27일 제주도 제주공항에서 차량으로 15분 거리를 달려 제주시 삼도동 ‘남성마을’을 방문했다. 섬 내륙에 자리 잡은 원도심 주거촌으로, 제주도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손꼽히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날 남성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에게서는 마을에 대한 자긍심이 엿보였다. 그들은 더 좋은 동네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남성마을 주민들은 오래된 주택과 좁은 골목길 사이에서 불편하게 생활해 왔다. 남성마을은 2019년 1월부터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를 열고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주거지 전반의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24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지어졌고, 반 이상인 13가구가 남성마을 철거지역 주민으로 채워졌다.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원치 않았던 주민을 제외하곤 모든 철거지역 주민이 입주에 성공했다. 혼자 사는 노인이 대부분인 철거지역 주민의 특성을 고려해 작은 평수에 저렴한 월 임대료를 책정했다.
건물이 없는 대지와 국공유지를 활용해 주민을 위한 공공공간도 조성했다. 낡은 빈집이 차지했던 자리에 주민 쉼터와 주차장, 마을도서관 등 생활편의시설이 들어섰다. 마을 주민이 축제나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남성문화광장을 조성했다.
남성마을이 품은 역사는 보존했다. 주차장 부지 옆에는 남성마을 표지석 쉼터를 조성했다. 남성마을 표지석은 일제강점기에 화장터가 있었다고 해서 ‘화장터’로 오랫동안 불려 온 남성마을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1996년 마을 사람들이 ‘남쪽에 새롭게 뜨는 별’이라는 뜻을 담아 세운 비석이다. 이후 주민들은 이곳에서 마을의 역사를 느끼고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며 표석제를 지냈다. 마을의 역사를 담은 표지석은 그 모습을 유지한 채 쉼터로 다시 태어났다.
각시당의 팽나무도 보존했다. 각시당은 제주도의 탐라입춘굿에 등장하는 옥황상제의 막내딸을 모시는 신당이다. 2018년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각시당의 자료와 증언을 모아 향토유산 등재 신청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남성마을 주민에게는 도시재생이 이뤄져도 마을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성마을 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는 “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지석의 의미와 각시당 앞 팽나무에서 제를 지내던 문화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3층으로 조성된 남성마을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는 남성마을의 역사와 이야기를 발굴한다. 또한 마을 이야기 길을 조성해 주민이 남성마을 방문객에게 마을 역사를 직접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남성마을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 이후 마을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며 만족감을 표시한다. 남성마을에 50년째 거주한 김 모(81) 씨는 “동네 할머니들이 경로당에 모이면 남성마을의 변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며 “옛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훨씬 살기 좋고 밝아진 마을에 살다 보니 삶에도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도시재생 주체로 나선 ‘명학마을’
경기도 안양시의 명학마을 역시 도시재생으로 주민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명학마을에선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됐다. 명학마을은 1974년 지하철 1호선 명학역이 신설되고 대형 병원이 들어서면서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마을 재개발사업이 2013년 무산되면서 슬럼화가 가속화됐다. 20년 이상 된 노후주택 비율과 고령인구 비율이 급증했다. 공영주차장에도 방치 차량이 늘어나는 등 명학마을은 침체하기 시작했다.
마을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변화했다. 공영주차장에는 두루미하우스와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이 들어섰다. 두루미하우스는 주민커뮤니티 시설로 마을 주민이 사용할 수 있는 공유주방과 공유창고 등의 공간이 있다.
초등학교 앞 노후한 주택에는 각종 복지시설이 있는 스마트 케어하우스가 생겼다. 스마트 케어하우스 1층에는 경로당, 2층에는 마을 카페인 ‘우리 동네 수다방’, 3층에는 공동육아나눔터, 4층에는 방과 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 함께 돌봄센터’가 지어졌다.
명학마을 변화의 중심엔 주민들이 있었다. 주민들은 2020년 직접 사회적협동조합을 결성해 도시재생사업 방향을 결정했다. 명학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이웅장 이사장은 “주민들과 사회적협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주민끼리, 또는 관과 갈등도 많았지만 주민들이 도시재생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많은 주민이 만족하고 있다”며 “도시재생은 주민을 위한 공동체 활성화라는 본연의 목적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