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보다 주민 위한 이동수단·동네사랑방 필요”[산복도로 '볕 들 날']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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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볕 들 날']
5. 주민들이 직접 그려 본 미래

트램 노선, 관광 동선 따라 설정
주민 수직 이동수단 논의 없어
실생활 관련 시설 없어 고립 심화
공영주차장·건강 인프라 시급
지역주택조합 주도 재개발 우려
시, 주민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부산일보> 취재진은 8일 오전 산복도로에 위치한 부산 동구 명란 브랜드연구소에서 주민들을 모아 ‘미니 반상회’를 열었다. 산복도로에서 삶을 이어온 주민 6명은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도시재생의 올바른 미래상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일보> 취재진은 8일 오전 산복도로에 위치한 부산 동구 명란 브랜드연구소에서 주민들을 모아 ‘미니 반상회’를 열었다. 산복도로에서 삶을 이어온 주민 6명은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도시재생의 올바른 미래상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이재찬 기자 chan@

809억 원짜리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통해 산복도로가 문화관광지로 자리 잡을수록 주민은 밀려났다. 산복도로의 가파른 계단은 여전히 주민을 가로막았고, 몰려든 관광객에 지붕이 무너지기도 했다. 수익 창출로 주민을 붙잡아 줄 것이라고 믿었던 거점시설들은 외면받고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8일 오전 10시 〈부산일보〉 취재진은 산복도로에 위치한 부산 동구 명란 브랜드연구소에서 주민들을 모아 ‘미니 반상회’를 열었다. 산복도로에서 삶을 이어온 6명의 주민과 나눈 대화는 투박했지만, 산복도로 안에서 바라본 도시재생의 올바른 미래상을 담고 있었다.

■산복도로, 고립된 공간에서 나아가기

산복도로 주민들은 열악한 교통 환경으로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나마 설치된 이동 수단마저 관광객의 동선 위주로 설치돼 있다고 호소했다. 지역사회 청년들의 소통창구역할을 하는 영도 청년 네트워크에서 일하고 있는 엄청환(38) 씨는 “영도의 숙원 사업이라 불리는 트램조차 그 경로를 보면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영도에서 대중교통이 가장 잘 짜인 도로를 기준으로 노선이 설정돼 있다”며 “산복도로 주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수직 이동 수단은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산복도로의 열악한 이동권은 곧 주민들 사이의 단절로 이어졌다. 서구 꽃마을 산복도로에 사는 임금옥(64) 씨는 “산복도로는 서구뿐만 아니라 중구, 동구 등 여러 구에 걸쳐 길게 조성돼 있음에도 서로 단절돼 있어 산복도로 안에서도 이동이 쉽지 않다”며 “산복도로가 하나로 이어지도록 이음길을 조성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산복도로가 단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른 마을과 비슷한 교통 환경을 가질 필요가 있다. 평생을 영도구 봉산마을 산복도로에서 살아온 성창현(51) 씨는 “영도 산복도로의 특성상 인도가 없는 곳도 너무 많아 사람과 차가 한 도로 위에서 위험천만하게 다니고 있어 자유로운 통행이 힘든 상황”이라며 “기존의 주택이 들어선 자리를 정비하고 인도를 만들어 안전하고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산복도로에 사는 것이 적어도 자식들에게 미안한 일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10년 이상을 동구 산복도로에 살아온 석갑덕(67) 씨는 “공영주차장도 빨리 신설돼야 한다”며 “명절 때 자녀들이 차를 가지고 힘겹게 고향을 방문해도 주차할 곳이 없어 힘들어할 때마다 산복도로에 사는 것이 미안해진다”며 말끝을 흐렸다.

■관광객 아닌 주민 위한 시설을

산복도로가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관광객이 아닌 주민을 위한 시설이 확충돼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의견이다.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는 거점시설 대신 실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이 그 예다. 서구 꽃마을 산복도로에 사는 손미화(65)씨는 “경로당에 계시는 어머니들이 대부분 80~90대이다 보니 연령대가 달라 기존의 경로당은 잘 찾지 않게 된다”며 “마땅히 여가 시간을 보낼 곳이 없어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산복도로에 남은 주민들도 고립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강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원도심 재생 사업체인 (주)공공플랜을 운영하는 이유한(37) 씨는 “관광객들을 위한 체험형 시설보다는 멀리 떨어진 병원에 가기 힘든 산복도로 주민들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시설이 산복도로에 필요하다”며 “원도심이 살고 싶은 곳으로 바뀌기 위해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부터 만족할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행복하지 않은 도시재생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시즌2에선 달라야

그간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관광지 조성 위주였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엄창환 씨는 “도시재생사업의 종합평가 지침을 살펴보면 유동 인구 변화, 매출 변화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데 이는 얼마나 상업지역이 활성화됐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주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주거복지를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도시재생사업이 가져올 난개발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를 덜기 위해선 부산시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다. 석갑덕 씨는 “주거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엔 매우 공감하지만 지역주택조합이 주도하는 재개발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주민들이 주체가 되지 못할 수 있다”며 “시가 나서서 장기적인 산복도로 도시재생 계획을 잡고 그 틀 안에서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진행돼야 50년이 지나서도 산복도로의 특성을 유지한 채 도시재생을 참 잘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시가 산복도로 르네상스 시즌2를 시작하기에 앞서 산복도로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이유한 씨는 “동구 초량동에 자리를 잡고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한 2019년에는 이미 산복도로 르네상스로 반짝 특수를 누린 사업자들은 자리를 뜨고 사업에서 소외된 주민들만 남아있었다”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지금 산복도로 르네상스 시즌2를 앞둔 이 공백기야말로 시가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방향을 바로잡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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