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재정·정책, 대학 중심… 하이델베르크대 독일 연구 메카로 [유럽 대학도시서 배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칸트·괴테·헤겔 배출 하이델베르크대
매년 수십억 유로 창출 최대 연구 단지
주민 다수 학생·교직원… 관광도 발전
대학 가치 키우니 도시도 덩달아 성장
인구 감소로 지역이 먼저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국내 지방 도시·지방 대학이 처한 현실이다. 반면 유럽 중소도시,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대학 도시’들은 젊은 인구의 유입, 끊임없는 일자리 창출, 그리고 주민들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대학과 지역사회가 동반 성장하고 있다. 유럽 4개국의 전통적 대학 도시를 찾아 도시와 대학이 긍정적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상생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지방도시·지방대가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본다.
독일 명문 대학엔 낭만이 있다. 지역이 대학 기반을 마련하고 대학이 비수도권 지역을 세계적인 도시로 키우며 대학과 도시가 하나의 유기체로 성장했다는 점에서다. 노벨상은 물론 걸출한 세계적 인재를 배출한 하이델베르크대·만하임대·괴팅겐대 등 다수 명문대는 독일인의 자긍심으로 통한다. 이들 대학의 공통점은 모두 지역 소도시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지역 대학이 커가며 세계적인 연구단지로 거듭나고, 뒤이어 지역 성장으로 이어지며 지역민은 경제 활성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대학이 지역의 ‘생존 플랫폼’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마누엘 칸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등이 졸업해 ‘명문대 속 명문대’로 통하는 하이델베르크대가 대표 사례다.
‘DEM LEBENDIGEN GEIST’(살아있는 정신에게). 이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건물에 걸린 문구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1386년 교황 우르바누스 6세의 승인을 받아 들어섰다. 이후 유럽을 비롯한 독일 최대의 ‘연구 메카’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적인 대학교로 성장했다.
하이델베르크대와 연계된 다수의 연구 기관은 매년 수십억 유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 중심이 되는 하이델베르크시의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16만 3000여 명에 그친다. 이는 서울시의 한 지역구 인구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하이델베르크대의 성장은 곧 비수도권 지역인 하이델베르크시 발전으로 이어졌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하이델베르크시는 수도인 베를린 못지않은 도시로 성장했다.
지난달 초 〈부산일보〉 취재진이 찾은 하이델베르크대 구시가지 캠퍼스 인근 거리는 평일임에도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학가엔 노트북을 켜고 작업하는 학생들과 가방을 둘러멘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하이델베르크대는 네카어강을 사이에 두고 유명 관광지인 ‘철학자의 길’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전 세계 관광객은 물론 독일인들도 자주 찾는 관광지로 꼽힌다. 아이를 데리고 ‘대학 투어’를 온 학부모의 모습도 더러 보였다.
인문학·사회과학 계열의 하이델베르크대 구시가지 캠퍼스 도서관에서 만난 파비안(27) 씨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가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인근 ‘하우프트 거리’엔 학생과 교직원, 관광객들이 뒤섞여 식사하거나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며 “하이델베르크대 출신의 유명 철학자들이 걸었던 철학자의 길과 대학을 구경하려는 사람이 많아 어느샌가 유명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대학을 중심으로 성장한 하이델베르크시는 하이델베르크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통계상 하이델베르크 주민 5명 중 1~2명은 학생, 교수 또는 교직원이다. 주민 다수가 학생과 교직원으로 이뤄지다 보니 도시 정책의 핵심은 단연 대학 운영과 교육이다.
하이델베르크대는 연방정부는 물론 주정부로부터도 재정 지원을 받는다. 지자체와 정부가 함께 대학을 지원하는 셈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일찌감치 ‘독일 우수대학 집중 육성 사업’을 추진했다. 독일 지역 대학의 경쟁력은 해당 지역에서 비롯된다. 한국처럼 정부 부처가 전국 대학 정책을 일괄 조정하는 것이 아닌 주정부가 직접 정책을 책임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을 위한 지원과 재정 확보 등에서 한층 자유롭다.
하이델베르크대는 생명·수학·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종합연구대학 전략을 펼치고 있다. 캠퍼스도 각 지역에 퍼져 있어 단순한 하나의 대학이 아닌 일종의 ‘연구단지’로 자리 잡았다. 독일 국립 암연구소(DKFZ), 막스플랑크 의학 연구소 등 많은 연구소가 캠퍼스 내에 존재한다.
대학이 체급을 키워감에 따라 지역 경쟁력도 덩달아 발전했다. 대학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아담 클라우스(51) 씨는 “한 국가에 수도가 있고 비수도권 지역이 있지만, 하이델베르크는 더 이상 지방이 아니다”며 “대학이 ‘심볼’로 자리 잡았고 직장과 사람, 돈이 몰리면서 여느 도시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대에서 근무하는 토비아스(33) 씨도 “오히려 수도권 학생들이 하이델베르크에 진학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독일)/글·사진=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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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