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대응기금, ‘깜깜이’ 나눠 먹기 운용
지자체 제출 사업안 평가 통해
1조 원대 규모 잘게 쪼개 지급
판정 기준 모호 주는 대로 받아
각종 정비 사업 등에 소진 일쑤
정부가 ‘지방 살리기’를 위해 수조 원 규모의 각종 기금을 조성해 운용해 왔지만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눠 먹기’식 배분으로 실제 각 지역에 미치는 재정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방을 지원하는 기금들이 ‘상향식’ 혹은 ‘수평식’ 제도라고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하향식’ 관행이 여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지방을 지원하는 기금은 점차 늘고 있다. 지방재정 불균형 문제 해결을 위해선 2010년부터 연 3000억~6000억 원 규모의 ‘지역상생발전기금’을 운영해 왔다. 정부는 2022년부터는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려고 연 1조 원 규모의 재정을 출연, ‘지방소멸대응기금’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개인이 고향을 위해 기부하는 방식으로 ‘고향사랑기부제’도 시행하고 있다.
지방이 최근 가장 기대를 걸었던 기금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이다. ‘1조 원 기금’으로 규모가 크고 ‘지방소멸 대응’이라는 목적으로 운용하는 최초의 재원이기 때문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재정 여건이 취약한 지자체(기초단체 75%, 광역단체 25%)에 직접 지원한다. 각 지자체가 ‘사업안’을 제출하면 정부가 이를 평가해 기금을 5등급(2024년부터는 4등급)으로 구분해 지급한다.
기금 배분은 A~E등급까지 ‘평가등급’과 ‘인구감소지역’, ‘관심지역’으로 구분된 인구감소 정도에 따라 다르다. 정부는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투자계획을 수립하면 우수한 지역에 과감하게 투자하겠다”며 자율성을 강조했다. 특히 지자체가 사업 내용을 제안하는 방식 때문에 '상향식’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부 평가로 등급을 받게 돼 실제로는 ‘하향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담당자들은 “등급 판정의 기준을 알 수 없다”면서 “결국 주는 대로 받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부산의 경우 인구소멸 위기 해당 지역인 5개 지자체 대부분 하위 등급을 받았다. 동구가 최저등급인 E등급을 받았고 나머지 2개 지자체가 D등급, 2개가 C등급을 받았다.
‘1조 원 기금’으로 주목을 받은 지방소멸대응 기금은 실제 지자체 수준에선 규모도 크지 않다. ‘나눠 먹기’ 식 재원 배분으로 실제 해당 지자체가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연간 10억~100억 원 정도다. 행정안전부가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부산의 경우 부산시 본청과 5개 인구소멸위험지역(동구, 서구, 중구, 영도구, 금정구)이 받은 기금은 모두 합해서 지난해 217억 원, 올해 288억 원에 그쳤다. 부산시가 광역시 가운데 이례적으로 인구소멸 위험이 높지만 실제 기금은 대부분 농어촌 지자체에 집중됐다.
기금 효과도 불투명하다. 부산에서 기금을 가장 적게 받은 금정구의 경우 올해 배분액이 18억 원이다. 가장 많이 받은 서구는 80억 원을 받았다. 서구는 기금을 ‘폐·공가 개선사업’ ‘보행환경 개선사업’ ‘CCTV 설치사업’ ‘가로정비 사업’ 등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인구소멸을 막는 사업보다 기존 도시 정비 사업에 활용된 셈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집행률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4억 원을 받은 동구는 육아종합지원센터 등 3개 시설이 들어서는 ‘어울림 복합 플랫폼’ 건설에 기금을 사용할 예정이다. 그러나 해당 사업 부지 변경 등 문제가 발생해 상반기(지난 6월 30일 기준)까지 예산을 전혀 사용하지 못해 집행률 0%를 기록했다. 울산시도 올해 상반기 집행률이 0%다. 지자체가 사업을 주도하는 ‘상향식’ 구조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집행률 0%는 발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